더펀즈, 아이들의 상상력 놀이터

thefunz

감성 미술 교육 콘텐츠 회사, 더펀즈

안녕하세요, 저는 더펀즈(The Funz)의 정경옥이라고 합니다. 더펀즈는 감성 미술 교육 콘텐츠를 제작하는 회사에요. 첫 기반을 온라인에서 시작해 지금도 온라인에서 콘텐츠를 유통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더펀즈 제품들은 교과과정에 의거해 다양한 미술 재료를 이용해 창작 활동을 하면서 지식도 탐구할 수 있는, 크로스오버적 요소가 많은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저희는 교과 과정에 나오는 건 다 만들어요. 경주의 새 박물관에서 새에 관한 콘텐츠를 만들어달라고 해서 새에 대한 지식을 탐구하면서 창작 활동을 할 수 있게 연계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고요. 다 해요. (웃음)

저희는 대부분의 제품은 대량생산해서 기관이나 학교에 납품하는 식으로 판매하고 있어요. 저희는 제품 단가가 싸요. 한 패키지당 1,000원, 1,500원?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 판매는 없고요. 깃털이나 폼폼, 리본 같이 별 걸 다 하는데, 이런 것들이 교육적인 효과가 있다기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교육적으로 접목시킨 제품들이에요 대부분.

더펀즈의 시작은 미술학원 펀즈부터

저는 디자인 대학을 나왔는데정말 솔직하게 잘하는 게 없었어요.
그래서 작게 동네 미술학원을 차렸어요.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결혼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저는 대학교 다닐 때 아르바이트도 해본 적도 없고, 졸업하고는 잘하는 게 없어서 취직도 못했어요. 그래서 26살에 결혼을 했는데, 결혼해서 보통 뭘 할까요? 요리? 집 꾸미기? 한 5년 열심히 했어요. 그러던 중에 남편이 디지털카메라를 사주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요리했던 것들, 집을 꾸민 것들을 찍기 시작했어요. 그때가 2002년이었어요. 제가 찍은 걸 싸이월드나 다음 카페 같은 곳에 올리기 시작했어요. 재미있더라고요. 댓글도 재미있었고요. 그래서 사진을 열심히 찍기 시작했어요. 그때 열심히 찍은 사진들이 아직까지도 더펀즈 홈페이지 상품 소개 사진으로 걸려 있어요. 물건을 팔기 위해 찍은 사진이 아닌데. 부끄럽게도 10년 전에 찍은 사진 그대로 제품을 판매하고 있어요.

솔직히 이야기해야 하죠? (웃음) 저는 목표가 별 거 아니었어요.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조금 더 큰 집, 지금 타고 있는 차보다 조금 더 좋은 차. 그런데 남편을 보니까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더라고요. 그러면 내가 벌어야겠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했어요. 저는 디자인대학을 나왔고요, 결혼할 때 석사 2년차였어요. 저는 정말 솔직하게 잘하는 게 없었어요. 그래서 여러 가지 생각했는데, 분식집은 남편이 반대하더라고요. 그래서 작게 펀즈(Funz)라고 하는 동네 미술학원을 창업했어요. 그런데 조금 더 좋은 차, 조금 더 좋은 집에 살기 위해서는 남들과 다르게 수업을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미술학원 간판 말고 멋지게 보이는 간판을 만들었어요. 펀즈 아트앤디자인스쿨이라고.

미술학원을 하려면 일단 아이들이 들어오면 못 나가게 해야 하잖아요?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건 쉬운 일이지만, 그림을 싫어하는 아이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에요. 그래서 그림을 재미있게 가르치기 위해서 연구를 많이 했어요. 로봇을 좋아하는 아이는 로봇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로봇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식으로요. 종이로도 만들고 밀가루로도 만들고. 다양하게 수업을 하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에코백에 그림을 그리는 건 아주 흔한 수업인데,
그 당시는 에코백 자체를 구하기가 힘들어서 제가 재봉틀로 에코백을 백 개씩 만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수업을 하기 위해서 재료를 직접 제작하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까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콘텐츠를 나눠줄 수 없냐고.”

그러다가 곧 재료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에코백에 그림을 그리는 건 아주 흔한 수업인데, 그 당시는 에코백 자체를 구하기가 힘들어서 제가 재봉틀로 에코백을 백 개씩 만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수업을 하기 위해서 재료를 직접 제작하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까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콘텐츠를 나눠줄 수 없냐고. 아, 더 빨리 더 큰 집을 살 수 있겠구나. (웃음) 그래서 주변 유치원이나 학교, 학원에 콘텐츠를 나눠주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펀즈가 주변에 막 생기기 시작했어요. 1개의 학원이 4개가 되고 10개가 되고. 그래서 빨리 큰 집으로 옮겼어요, 솔직하게. 빨리 차도 바꿨고요. 그리고 지금은 울산, 대구, 평택, 대전에도 있고. 전국적으로 ‘펀즈 아트 앤 디자인 스쿨‘이라는 교육원이 운영 중이고요.

중국에 가서 보석을 찾아내기 시작하다

물건을 나눠주기 시작하면서 에코백이 천 개, 이천 개가 필요한 시기가 왔어요. 그러던 중에 우연찮게 제가 《VJ특공대》라는 프로그램에서 중국 시장을 봤어요. 저기 무조건 가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중국 급행 비자를 받고 중국에 갔어요. 결혼 8년 만에 쌍둥이를 출산하고 백일이 되기 전이었는데, 중국에 가겠다고 결심한 지 3일만에 퉁퉁 부은 몸을 이끌고 중국에 도착했어요. 중국 ‘이우(義鳥) 시장’ 가 보신 분 계세요? 대부분의 옥션, 지마켓 물건이 중국 이우 시장에서 나와요. 거기 가면 없는 물건이 없어요. 그런데 그 물건들이 제 눈에는 쓸 만한 게 없는 쓰레기로 보이더라고요. 그래도 기왕 왔으니까, 사막에 오면 모래라도 퍼 가자는 심정으로 한 5일을 돌아다녔어요. 돌아다니다 보니까 보석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보석을 무조건 여행가방에 담았어요. 제가 처음 중국에 갔다 온 메모에 이렇게 적어 놨더라고요. “이게 쓰레기가 될지 보석이 될지, 돌이 될지.” 저는 첫 중국행 이후에도 보석을 찾기 위해 한 달에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중국을 왔다갔다하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보석을 찾으러 가는 게 아니라 제작하러 가고요.

저는 물건이 천 개, 이천 개 필요한데 중국에서는 만 개, 오만 개씩 팔아요. 저는 만 개씩 수입하기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팔천 개 구천 개씩 재고가 남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치킨 가게 창업보다 쉽다는 온라인샵을 뚝딱 오픈했어요. 온라인 쇼핑몰은 만들기 어렵지 않아요. 무료 솔루션도 많고요. 저 역시 ‘카페24’라는 서비스를 통해 무료 솔루션으로 더펀즈라는 온라인샵을 열었습니다. 제가 펀즈라는 학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앞에 더만 붙여서 더펀즈라고 만들었어요.

온라인샵을 오픈하면 재고가 소진될 줄 알았는데, 한 달에 매출이 0원이었어요. 아무도 안 들어왔어요. 그래서 광고를 했어요. 예산이 십만 원이면 십만 원 어치 광고를 했고요, 예산이 백만 원이면 백만 원 어치 광고를 했어요. 광고를 하니까 신기하게도 물건이 팔리기 시작하더라고요. 그게 지금으로부터 만으로 딱 5년 전이에요.

전시가 가져다준 기회

제가 2012년에 전시를 하면서 “이 작은 전시를 통해 코엑스 ‘리빙디자인페어’도 나가고 파리 ‘메종드오브제’도 나가겠다”고 페이스북에 낙서처럼 글을 올렸어요. 그리고 저는 2013년 2월에 코엑스에서 브랜드 단독으로 부스 전시를 했고,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줄곧 리빙디자인페어를 진행하고 있어요. 그리고 크고 작은 전시를 1년에 10개 이상씩 코엑스에서 계속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물건을 팔고 브랜드를 알리기보다는 제 만족을 위한 게 더 컸어요. 내가 여기까지 일을 했으면 이 정도 전시는 해야 하지 않을까? 또 그 당시에 4~5년 동안 파트너로 같이 일해온 디자이너 직원이 있었어요. 그 직원에게 너희 회사가 이런 회사다 보여주고 계속 붙들어두기 위해서도 전시를 했어요.

전시를 하면서도 내가 이걸 왜 할까 궁금했는데
전시를 통해 기회를 많이 얻게 되더라고요.

전시는 아주 성공적으로 마친 듯 했으나 그때뿐이더라고요. 그런데 그때뿐인 전시를 수도 없이 했어요. 전시를 하면서도 내가 이걸 왜 할까 궁금했는데, 저도 잘 몰랐어요. 만 2년 동안에 30개 이상의 전시를 하면서 나는 왜 실패할까, 멍청한 짓을 할까, 돈만 버리는 짓을 할까 하는 자괴감에 빠져 있었는데, 전시를 통해 기회를 많이 얻게 되더라고요. 전시를 통해 얻은 기회 중에 대표적인 게 DDP 매장 2층에 오픈한 더펀즈 매장이고요, 삼청동에 있는 제일모직 하티스트 매장이 있어요. 롯데백화점 잠실점라든가, 크고 상징성 있는 매장에는 대부분 더펀즈가 입정해 있어요. 그리고 서울디자인재단의 후원으로, 아까 낙서처럼 끼적였던 것처럼 세계에서 가장 큰 디자인 오브제 전시인 파리 메종드오브제에 9월 4일 브랜드 단독 부스로 나가게 되었어요. (박수)

처음 목표는 정말 좋은 차와 넓은 집이었는데요. (웃음) 하다 보니까 교육적인 사명감도 생기더라고요. 이런 활동을 통해서 기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까 더 잘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기기도 하고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 제가 강의를 할 수 있는 자격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다음에 이런 기회가 있으면 여러분도 저도 더 기쁜 모습으로 만나뵙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Q&A

Q&A는 OEC 장영화 대표가 방청객들의 질문을 받아 진행했습니다.

Q. 실패한 이야기는 하나도 안 하셨잖아요. 이런 건 정말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사례가 있으세요 혹시?
A. 제가 학원을 하고 있었을 때는 제 밑에서 매니저 일을 봐주던 강사 선생님들이 모두 학원을 창업했어요. 최근에 북아트 회사를 하고 있었을 때는 제 일을 5년 이상 봐주던 사원이 북아트 회사를 창업했어요. 개인적으로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그리고 중국에서 물건을 생산하다 보니까 쓰레기가 많이 들어와요. 인형을 만 개를 생산했는데 전부 걸레가 들어온 적도 있었어요. 그런 실패들? 너무 많죠. 눈물 나려고 해요 이야기하다 보니까.


Q. 쓰레기가 만 개나 오면 어떻게 처리해요?

A. 5,000원에 판매되는 제품을 적당한 마진선에서 한 번에 백 개를 팔고 그래요. 그리고 기부단체에 많이 나눠줬어요. 그게 또 다른 광고가 되었고요. 그런 식으로 매번 다른 방법을 이용해서 처리해요.


Q. 사업 시작할 때 목돈이 들어가지 않나요?

A. 저는 돈이 없어서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어요. 일단 6개월 여유 자금까지는 모아야겠더라고요. 제일 쉬운 게 뭐였을까요? 그냥 안 썼어요. (웃음) 그냥 안 쓰고 모아서 어느 정도 자금을 만들었고요. 소상공인 대출제도로 대출 받을 수 있는 한도껏 대출 받았어요. 남편 보증 세워서. 그래서 6개월 여유 자금까지 모았다가 6개월도 안 되어서 다 갚았던 것 같아요. 돈의 액수는 상상에 맡기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큰 돈은 아닌 것 같아요. 차 한 대값? 중형차일지 대형차일지는 상상에 맡기는 걸로.


Q. 학원이 잘된다 싶을 때 따라하는 다른 학원들은 어떻게 하셨나요?

A. 그거 많았죠. 지금도 검색해보면 똑같은 이름의 학원이 있어요. 처음에는 잠도 못 자고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지금은 기뻐요. 나 잘하고 있구나, 내가 잘하니까 따라하는구나, 더 잘해야지.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을까? 매일 연구합니다.


Q. 쇼핑몰 만들었을 때 하나도 안 팔리다가 광고를 해서 조금씩 팔리기 시작했다고 하셨잖아요. 그 부분이 궁금한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A. 예전에는 ‘오버추어 광고’라고 해서 돈만 지불하면 모든 검색 엔진에 노출되던 시대가 있었어요. 박람회를 한 여러 계기 중 하나가 네이버 광고비가 너무 많이 나가서였어요. 한 달에 천만 원이 나갈 때도 있거든요. 그런데 방문자는 많이 들어오지만 매출은 그다지 늘지 않더라고요. 차라리 이 돈으로 현장에서 소비자를 직접 만나보자고 해서 광고비를 박람회 비용으로 전환시켰어요. 저는 지금도 광고는 안 하고 있어서 광고비는 0원이에요. 그런데 열심히 하다 보니까 내 물건을 팔아주는 딜러들이 오더라고요. 전시장을 통해서 내 물건을 팔아줄 수 있는 바이어들을 찾는 걸로 광고비를 대신하는 것 같습니다.


Q. 정말 고생해서 만들어낸 콘텐츠들이 카피되면 법적인 보호장치에 대해서 고민하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대응하고 계신가요?

A. 이런 이야기 하기는 좀 그런데, 법적인 보호를 받기보다는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는 방법밖에 없어요. 저는 법적인 거 신경 쓰다가는 내일로 사업 접어야 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남들이 하나 개발할 때 열 개, 남들이 열 개 개발할 때 백 개 개발하고. 지금 그렇게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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