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다 할 수 없지만

10_풋내기들

세상에는 말로 다 하지 못하는 일이 너무나 많다. 차마 용기 내지 못해서 혹은 그/그녀가 이미 떠나버려서 등의 사연도 사연이거니와, 말 그대로 ‘말로 표현 못하는’ 사연이 얼마나 많은지. 계절의 냄새가 바뀌는 초저녁부터 마음이 무너지는 이별까지. 이렇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순간들을 고이 담아내는, 그것도 요란한 수사어구 없이 간결한 문장으로 말하는 작가가 있다. 그렇다. 리얼리즘과 미니멀리즘의 대가이자 소위 ‘작가들의 작가’인 레이먼드 카버다.

그의 작품들은 대체로 밝은 편이 아니고, 나도 따뜻하기보다는 서늘한 그의 글을 좋아한다. 단편집 『풋내기들』에서 가장 먼저 독자를 맞이하는 소설 「춤추지 않을래?」가 그러하다. (비교적 따뜻한 작품으로는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대성당」이나, 세월호 참사 직후 팟캐스트 ‘빨간책방‘에서 담담하지만 단단한 위로를 담아 낭송되기도 한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 있다.) 「춤추지 않을래?」는 ‘참 좋았다고, 그러니 가지 말고 머물러 달라고’ 말로 채 다 하기도 전에 사라져버린 것들의 서늘한 빈 자리를 더듬는 소설로, 텅 빈 자리를 아련함으로 채우는 레이먼드 카버의 장기가 발휘된 작품이다.

마당 세일이 진행되는 어느 오후. 주인 맥스는 물건을 팔 생각이 없는 듯 위스키만 마신다. 물건보다는 물건에 깃든 누군가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데 더 골몰한 것 같다. 이때 한 남자애 잭과 여자애 칼라가 들른다. 둘은 키스를 나누기도 하고 물건을 둘러보다가 맥스와 마주친다. 이런저런 잡담을 주고받다가 은 함께 술을 마시게 되는데, 언제부턴가 흘러나오던 레코드판 음악을 배경으로 맥스가 칼라에게 말한다. 춤추지 않을래? 여자애와 중년 남자가 마당에서 춤을 춘다.

“나중에 여자애가 말했다. “중년쯤 된 아저씨였어. 물건을 죄 앞마당에 내다놨더라. 진짜라니까. 우린 취해서 춤도 췄어. (…) 나 자다가 중간에 한 번 깼거든. 근데 우리한테 담요를 덮어주고 있는 거야. 그 남자가 말이야. 이 담요야. 만져봐.”

여자애는 계속 이야기했다. 모두에게 이야기했다. 뭔가 더 있었다는 건 여자애도 알았지만,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얼마 후 여자애는 이에 대해 더는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다.

– 24~25p

레코드 음악이 넘실대던 마당이 등장인물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작가는 구구절절이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참 좋았다’고 칼라의 짧은 감상으로 기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다’는 마지막 두 문장만으로도 그 찰나가 얼마나 빛났는지, 그리고 이미 그 순간이 그들의 인생에서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WWR 레터에 첫 글을 남기며

서툰 솜씨와 수줍음을 가장한 게으름이 방해하겠지만, 이 레터를 통해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들을 더듬더듬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마당에서 춤을 추던 여자애와 다를 바 없이 말로 다 할 수 없더라도, 소설 속 그녀와는 다르게 이야기를 계속해보겠습니다. 이렇게 더듬거리는 말이라도 당신을 외롭지 않게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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