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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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추천한 책 3권 중 1권은 절판되었고 1권은 품절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스스로도 이건 좀 심했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 퍼블리로부터 이번에는 책 말고 다른 글을 추천하는 건 어떻겠냐는 요청을 받았다. 순순히 그러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나는 책 이외의 글은 거의 읽지 않는다.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넘쳐나는, ‘검증되지 않은’ 글들을 고르고 읽을 시간은 없다.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머리를 싸매고 한참을 고민하다 내 나름의 비(非)도서 추천 원칙을 세웠다.

1) 읽을 가치가 있을 것, 2) 접근이 쉬울 것, 3) 사람들에게 많이 노출되지 않았을 것.

세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글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페이스북 페이지가 떠올랐다.

허숙재 씨는 학생 시절 수 차례 문학공모전에 입상한 경력이 있긴 하나 평범한 60대 주부다. 그러나 허숙재 씨의 글은 소박하면서도 날카로운 통찰을 한가득 담고 있다. 어디의 박사나 전문가가 전문지식을 늘어놓으며 무지한 우리를 계도하려는 데에 비하면, 허숙재 씨의 글은 그야말로 업무시간 중 사우나 같은 휴식이다. 그녀의 글은 엄하면서도 푸근하며, 씩씩하면서도 수줍고, 지극히 작은 것을 얘기하다 한 없이 큰 주제를 다룬다.

그녀의 글은 아름답다.

“5년째 살고 있는 이문동은 재개발이 필요함직한, 세련되지 않은 동네인데 허름하고 막다른 골목에 차도 안 들어가는 집, 무너질까 염려되는 구옥, 수익 우선으로 세대 수를 있는 대로 늘린 갑갑한 집들을 보며 산책하다 보면 신기한 건 줄장미 가는 줄기, 담쟁이, 능소화 조그마한 주황색 얼굴만 담 사이에 비쳐도 더 이상 초라해 보이지 않고 정겹고 따뜻해 보인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도 이런 꽃 같은 존재들이 있고 나도 한때 우리 아버지께 한 송이 장미꽃이었다.

– 2013년 7월 11일 포스팅

그녀의 글에는 통찰이 있다.

“자신의 강점을 유독 강조해서 PR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령, 난 남들보다 양보심이 많아, 다른 건 몰라도 돈에 대해서는 자유롭고 욕심이 없어, 남편한테 나만큼 잘하는 사람 못 봤어 등등. 본인이 그렇게 말하면 처음엔 자신 있게 말하니 그렇게 보여지기도 하지만 이 나이 되어 깨닫는 건 그토록 자신 있다며 반복해서 말하는 바로 그 부분이 그 사람의 치명적 문제일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 2015년 6월 29일 포스팅

그녀의 글에는 사랑이 있다.

“사랑은 참아주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위해서 한대 쥐어박고 싶어도 참고 견디며 온유하게 대하고, 면전에다 대고 넌 정말 아니야 해주고 싶어도 무례히 행하지 않고 존중해주는 것, 눈에 빤히 보이는 거짓말도 모른 채 해주고 열심히 계산된 패를 내놓아도 나라도 그럴 수 있겠거니 하며 네가 옳다 해주고 백 개 천 개를 내어주고도 생색내며 한 개를 내밀 때도 기뻐하며 고맙다고 말하며 거절 않고 받아주는 것. 참 어렵다.”

– 2013년 5월 27일 포스팅

허숙재 씨의 글은 60년 인생이 견고하게 떠받치고 있기에 묵직한 힘이 있다. 나는 운 좋게도 허숙재 씨의 아들로 태어나 그녀가 쓴 글들을 가장 먼저 읽고 즐길 수 있었지만, 이제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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