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이 그에게 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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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의 동화집 『행복한 왕자』는 가장 화려하고 행복해 보이는 왕자의 동상이 자신의 보석을 모두 슬프고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고 결국 폐기처분되고 마는 이야기다. 이 동화를 쓸 때, 오스카 와일드는 자신의 말년을 조금이라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심연으로부터』는 부와 성공을 거머쥔 영국 사교계의 남신이었던 그가 동성애자라는 추문 때문에 한순간 추락해버린 말년에 대한 이야기다. 또한 심신을 파괴하는 끔찍한 2년여의 감옥 생활 중 연인에게 쓴 절절한 연서이자 호소문이며, 유서이기도 하다. 상대가 자신의 사랑을 받기에는 모자라고 비열한 존재임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빠져든 몹쓸 사랑 때문에 오스카 와일드는 모든 것을 빼앗겼지만, 그는 그 심연의 고통 속에서 값진 것을 깨닫는다.

이제 난 세상에서 의미 없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그중에서도 의미없는 고통은 더더욱 있을 수 없다고 내게 속삭여주는 무언가가 나의 내면에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된 거야… 겸손은 내게 남은 마지막이자 최고의 것이었어.

– 『심연으로부터』 138p.

그의 동화들은 어쩌면 그리도 자기예언적인지, 그 역시 슬픔과 고통의 멍에를 지다가 결국 압사해버리고 말았다. 보수적인 영국 사회는 그의 이마에 낙인을 찍어 추방했고, 모든 것을 걸고 사랑했던 열여섯 살 아래의 동성 연인 더글라스는 그에게서 철저히 돌아섰다. 말년의 그는 싸구려 호텔을 전전하며 돈을 구걸했고, 가족과의 모든 끈이 끊긴 채 병으로 쓸쓸히 사망했다.

그의 또 다른 동화 「별에서 온 아이」 역시 의미심장한 결말을 맺는다. 아름답고 빛나는 외모로 다른 이들을 무시하고 괴롭혔던 별아이는 어느날 외모가 추악하게 변하고, 모두의 냉대와 멸시를 받게 된다. 그런 쓰디쓴 시간을 통과한 후에야, 별아이는 가난하고 불쌍한 이들을 돌아보는 어진 왕이 된다. 그러나 그 마지막은 이러하다.

그러나 별아이는 오랫동안 다스리지는 못했습니다. 별아이의 고통은 너무 컸고, 별아이에게 시험의 불꽃은 너무 뜨거웠던 것입니다. 3년이 지나자 별아이는 죽었습니다.

– 『행복한 왕자』 146p

출소 후 오스카 와일드는 글을 더 이상 쓰지 못했다고 한다. 마치 별아이처럼, 오만했던 문단의 총아는 감옥이라는 풀무불 속에서 “삶은 글로 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저 살아내는 것입니다. 나는 삶을 살아냈습니다”(『심연으로부터』 32p)라고 겸허하게 고백하게 되었다. 1897년 출소한 이후, 3년 뒤인 1900년 파리의 한 호텔에서 그가 숨을 거두었다는 연보를 찾아 보고서,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 그가 겪은 고통은 너무나도 컸다. 그에게 시험의 불꽃은 너무나 뜨거웠던 것일까?


*본 글에서 참고한 도서는 2001년 출간된 창비판 『행복한 왕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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