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명예와 동정과 자존심과 이해와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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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제는 ‘이 작품이 나에게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일 것이다. 이를 ‘인생의 의미란?’이라는 질문으로 치환해 보면, ‘삶이 내게 알려주는 것이 무엇인가?’, ‘내 삶을 통해 나는 무엇을 알고 싶은가?’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삶의 의미를 알기 위해 소설을 읽는 것일지도 모른다.

『보트』에 실린 7편의 이야기 중 「사랑과 명예와 동정과 자존심과 이해와 희생」은 저자 남 레(Nam Le)의 자전적 단편소설로, 《뉴욕타임즈》 리뷰에서는 이 소설의 주인공을 ‘the fictional Le’라고도 표현했다. 저자 남 레는 베트콩과 미군 양측에 의해 끔찍한 유년을 경험한 아버지와 함께 보트피플 출신으로 서구사회에 편입, 높은 진입장벽을 뚫고 변호사가 되었지만 지금은 소설가로서 살아가고 있는 남다른 배경 때문에 ‘사랑, 명예, 동정, 자존심, 희생’과 같은 주제에 대한 소설을 쉽게 쓸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성공한 이민사회 출신의 아픔과 결핍에 관하여 시큼들큰한 동남아 요리의 풍미를 섞어 글을 쓰기를 거부한다. 자신만의 경험을 작품으로 재현하는 것이 가져올 위험, 즉, 일생에 걸쳐 내보이고 싶은 주제가 희석되고 가벼이 다루어질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아이오와에 온 지 1년이 넘었지만, 단편소설 네 편 반을 썼을 뿐이다. 단어 수는 1만7천쯤 된다. 법률사무소에서 일할 때에는 그 정도 분량의 글을 2주마다 쓰곤 했다. 게다가 그 글은 최소한 누구에게 도움이라도 되었을 것이다.

– 16p

이처럼 그는 차라리 변호사 시절 법원에 제출하던 서면이 더 유용했다고 푸념하면서도, 가슴에 간직한 ‘크고 위험한’ 이야기가 ‘읽고 손뼉 치고 잊혀지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 저자는 이러한 고민에 내몰렸음에도, 놀라운 결말을 통해 사랑과 명예와 동정과 자존심과 이해와 희생이라는 소설의 주제를 유감없이 구현해내는데, 눈을 비비고 다시 읽어야 할 만큼 믿기지 않는 결말을 도저히 말로 다 옮길 수 없다. 책을 읽어보시면 좋겠다.

강 표면이 얼려면, 완벽하게 크리스털 같은 세계 안에 갇히려면, 몇 시간, 아니 며칠이 걸릴까. 그리고 그 세상이 작은 돌이 내는 단음절로도 얼마나 깨어지기 쉬울까.

– 46p

강 표면의 살얼음 같은 연약한 인간이 여전히 살아남아 세대를 보전하고 있는 것은 경이롭다. 이 경이로움은 이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나’들 덕분에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수많은 타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내 삶이 어떻게 특별할 수 있으며, 사랑과 명예와 동정과 자존심과 이해와 희생이 성립할 수 있겠는가. 저자가 책 전체에서 히로시마에서부터 뉴욕까지 넘나들며 수많은 ‘나’를 깊이 들여다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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