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만들어지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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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다시 쓰고, 고쳐 쓰고

2014년 10월 개관한 국립한글박물관은 그리 널리 알려진 곳은 아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지척에 있는 국립한글박물관은 2층 상설 전시관을 운영하는 한편, 다양한 기획 전시를 진행하는 기획전시실을 3층에서 운영하고 있다. 7월 21일 전시를 시작한 《쓰고, 고쳐 쓰고, 다시 쓰다(이하 ‘다시 쓰다’)》 전시도 그 중 하나다.

《다시 쓰다》의 주제는 ‘소설 속 한글’이다. 한국 소설에서 한글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전시는 한 가지 큰 갈래를 잡았다. 먼저 소설이 만들어지는 첫 번째 단계인 집필 과정을 보여주고, 만들어진 초고를 다듬는 과정, 마지막으로 책으로 만들기 위해 다시 한 번 수정하는 작업을 한 흐름으로 보여준다. 이 과정이 그대로 전시 이름인 쓰고-고쳐 쓰고-다시 쓰다가 된다.

 

먼저, 쓴다

전시실은 여러 개의 열린 ‘방’들로 구성되어 있어 각 전시물에 집중하기 좋다. 각각의 방에는 주제가 있고, 관람객은 전시의 흐름에 맞춰 각 방을 방문하고 방의 주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관람객이 가장 처음 만나게 되는 것은 소설가 배상민의 작업실 ‘소설가의 방’이다. ‘소설가의 방’에는 “이 노트북이 아니면 작업을 할 수 없다”는 배상민 작가의 노트북이 전시되어 있고, 일주일에 2번씩 실제 작가가 이곳에 와서 집필 작업을 한다고 한다. 작가가 자리가 없을 때는 배상민 소설가의 하루(출판사를 방문하고, 카페에서 글을 쓰고, 집에 돌아와서 다시 노트북을 켠다)를 정리한 동영상을 상영한다. 이곳에서 배상민 작가는 본인의 작품과 작업 도구는 물론 자기 자신마저 전시물의 하나로 전시한다.

무진기행 초고

― 소설 『무진기행』 자필 초고 ―

배상민 작가의 노트북를 포함해 《다시 쓰다》에는 작가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다양한 집필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소설가 조정래가 대하소설 『아리랑』을 쓰는 동안 사용했다는 펜과 586개의 펜심, 아직도 원고지에 연필로 원고를 쓴다는 소설가 김훈의 육필 원고, 『연인 심청』을 쓴 소설가 방민호가 작품을 쓰는 데 사용하는 핸드폰 등 다양한 도구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고쳐 쓴다

‘소설가의 방’을 나오면 곧바로 소설가 김애란과 김중혁이 문장을 쓰고 고치는 과정을 그대로 기록한 영상물을 만날 수 있다. 이 동영상은 작가들이 봤을 모니터 화면을 관람객들에게 그대로 보여준다. 하얗게 빈 워드 프로그램 화면과 초조하게 깜빡이는 커서, 그리고 수없이 쓰고 또 지우는 문장들은 소설가의 고뇌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집필 과정을 보여주는 동영상

― 집필 과정을 보여주는 동영상 ―

그 다음 방에서 김훈 작가는 관람객들에게 소설가들이 느끼는 고뇌의 깊이에 대해 말한다. 특히 김훈 작가는 한국어의 특징인 ‘조사’에 대해 설명한다. 한국어는 결국 조사의 사용에 따라서 문장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더욱 더 조사의 사용이 중요하다며 김훈 작가는 시인 김소월의 「산유화」의 예를 든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 김소월 「산유화」 중에서

김훈 작가는 “같은 주격 조사라 하더라도 꽃은 피네, 하면 그것은 완전히 똥통에 빠지는 거라”고 말한다. ‘꽃 피네’ 뒤에 ‘꽃은 피네’가 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조사에 대한 그의 관심은 『칼의 노래』의 첫 문장인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와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 사이에서 길게 고민했다는 에피소드로도 유명하다. (결국 전자가 채택되었다.)

한편 김훈 작가의 방에는 그가 사용했던 다양한 분야의 사전들과 함께 ‘앵하다’, ‘꾀송꾀송하다’ 등 잘 쓰이지 않는 한국어 표현들이 카드 형태로 전시되어 있다. 조사를 정확히 쓰는 것만큼이나 적확한 표현을 풍부하게 쓰는 것도 소설가의 능력이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가와 단어의 관계에 대해서 소설가 김연수는 이렇게 말했다.

“소설가에게 단어란 화가에겐 색채와 같은 것입니다. 화가가 색채의 세밀한 차이를 잡아내는것처럼 소설가는 정확한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화가가 ‘울트라마린’과 ‘인디고’를 구분할 수 있다면, 소설가는 ‘휘청거리다’와 ‘지벅거리다’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 김연수, 『소설가의 일』 중에서, 전시 문구에서 재인용.

다시, 고쳐 쓴다

문장 변천사

― 이광수 『무정』의 문장 변천사 ―

소설가들의 방을 지나고 나면 ‘우리말글로 소설을 쓴다는 것’이라는 이름의 방이 나타난다. 지금이야 한국어로 된 소설을 읽고 쓰는 게 자연스럽지만, 불과 70여년 전인 일제강점기에는 한국어로 작품을 발표하는 것은 금기시되었다. 그 사이 한국어가 겪어 온 세월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이 방은 70여년 간 바뀌어 온 맞춤법 규칙에 따라 한 작품의 문장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보여주는 한편, 한국어 사이에서도 시대에 따라 번역 작업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이광수 작가의 『무정』 문장 변천사가 전시되어 있다.

교열자는 글 쓰는 사람들을 빛나게 해주는 사람

― ‘교열자는 글 쓰는 사람들을 빛나게 해주는 사람’ ―

그 다음은 문장의 정합성을 높이는 문장 전문가인 교열자들의 방이다. 교열자의 역할은 오탈자를 잡고 비문을 잡아내는 첨삭에서 끝나지 않는다. 교열자는 문장의 의미를 작가의 의도에 맞게 다듬으며 또한 필요하다면 작가에게 새로운 어휘와 문장을 제시하기까지 한다. 이 방은 교열자의 역할을 인터뷰 영상과 교정 예시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보여준다.

한국에서 소설을 논하면서 번역서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출판 시장에서 번역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세계적으로도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번역가 조재룡은 번역가의 방에서 번역이란 우리에게 없는 개념들을 수입해 오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번역가 조재룡 “번역은 타자의 언어를 내 모국어로 대면하여 싸우는 일.”
번역가 정하연 “번역은 짐을 지고 강을 건너는 일”

번역자 조재룡의 말대로 번역이란 일대일로 등치할 수 있는 개념들을 찾아 변환하는 과정이 아니다. 번역은 한 문화가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과정이며, 번역가는 이런 과정에서 기존에 없던 개념들을 만들어내 기존 언어의 경계를 확장하는 직업이다. 번역가의 방을 나서면 하나의 원작의 다양한 번역서 판본들을 비교해서 볼 수 있는 작은 선반이 준비되어 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의 십수 가지 판본이 비치되어 있어 번역문을 쉽게 비교해 볼 수 있다.

번역가의 방 바로 옆에는 소설가가 원고를 쓰는 것부터 책이 출간되어 독자에게 닿기까지 과정을 정리한 도식이 전시되어 있다. 각 과정에 대한 자세한 영상물을 상영하고 있고, 일반 독자는 보기 힘든 펼침면 출력본, 인쇄용 필름 등이 같이 전시되어 있다.

작가 인터뷰 영상

― 작가 인터뷰 영상 ―

마지막 공간으로 넘어가기 전, 고개를 잠시 돌리면 작가들의 영상 인터뷰가 재생하는 작은 공간이 있다. 관심이 있다면 체크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마지막으로 보존한다

《다시 쓰다》 전시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거대한 서재처럼 꾸며 놓은 ‘문장의 숲’이다. 이 공간의 다른 이름은 ‘라카지엄’이다. 도서관(라이브러리)과 아카이브, 그리고 박물관(뮤지엄)의 역할을 한 번에 수행하게끔 만들었다고 한다.

‘문장의 숲’에는 소설가 최인호의 『광장』 같이 오랜 시간 동안 여러 번 재출간된 작품의 다양한 판본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영화로 제작된 소설들의 원작 소설, 영화 포스터, 영화 필름 등도 같이 전시되어 있다. 문예지 초판본과 등단 제도에 대한 설명도 되어 있으니 소설가가 되는 방법에 대해 관심이 있는 관람객이라면 놓치지 말자.

또 새로운 형태의 소설쓰기를 실험하는 ‘잠재문학실험실’의 체험형 전시도 빼놓을 수 없다. 주어지는 단어에 대한 추억을 기역부터 히읗까지 주어지는 초성에 따라 작성하면 곧바로 뒤에 보이는 스크린에 표시되는 독특한 체험 전시가 인상적이다.

문장의 숲은 북카페처럼 되어 있으니 전시장 밖으로 나가기 전에 전시 내용과 주위에 비치된 책들을 편안하게 살펴볼 수 있다. 전시에 참가한 소설가들이 추천하는 책들도 비치되어 있다.

 

문장에 빠지다

《다시 쓰다》는 다양한 각도에서 문장을 뜯어보고 곱씹고자 하는 관람객에게는 부족함이 느껴지는 전시일 수 있다. 전시물의 목적은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작가가 문장을 수정하는 과정을 보여줄 때, 작가가 어떤 복잡한 사고를 거치는지 설명하기보다는 실제로 작가가 문장을 어떻게 쓰고 또 고치는지 영상으로 보여주는 방법을 취하는 식이다.

소설가의 창작 활동은 화가나 조각가의 것처럼 중간중간 작업물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다. 그런 소설가의 창작 과정을 관람객들에게 시각적으로 전달한다는 것은 《다시 쓰다》의 큰 매력이다.


전시 정보

전시명: 《쓰고, 고쳐 쓰고, 다시 쓰다》
기간: 2015.07.21 ~ 2015.09.06
장소: 국립한글박물관
(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로 139) 3층 기획 전시실
이용 시간:
화/목/금 09:00 ~ 18:00
수/토(야간개장) 09:00 ~ 21:00
일/공휴일 09:00 ~ 19:00 (월요일 휴관)
이용시간 종료 30분 전까지 입장 가능
관람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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