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되살리는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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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적인 수다 시즌 2-7: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들, 지역을 되살리는 청년들
일시
: 2015년 8월 5일 수 19:00-21:00
장소: 카우앤독 2층 C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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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엽: 안녕하세요. 와주신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 저는 행사의 진행을 맡은 한상엽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오늘은 연사 분들이 각각의 지역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들어볼 겁니다. 시작하기 전에 각자 자기소개와 하시는 일도 간단하게 소개해주세요.

김연석: 안녕하세요 저는 ‘청년장사꾼’의 김연석이라고 합니다. 저는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2012년 8월 첫 번째 매장을 오픈했고 지금까지 11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고요. 그와 발맞춰 지역 커뮤니티를 만드는 프로젝트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사단 마을의 ‘계단장’과 우사단 마을 커뮤니티를 조직해 운영하고 있고, ‘열정도’라는 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공장’이라고 하는 야시장도 진행하고 있고요. 거기서 ‘열정도 반상회’라는 커뮤니티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원래 건축 전공하면서 도시 공부했고, 문화기획자 출신의 장사꾼입니다.

주한빈: 저는 ‘청년문화공작소 청춘’이라는 공연기획팀을 하고 있는 주한빈이라고 합니다. 춘천에서 공연자와 예술가를 관객과 이어주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사업까지는 아니고요. 시작한 지 1년 정도 되었습니다.

양소영: 전주에서 왔고요, 남부시장 ‘청년몰’이랑 야시장 일을 같이 하고 있고, 좋은 말로 하면 매니저입니다. 4년차쯤 됐고요. 저는 어쩌다 보니까 한 곳에서 좀 오래 있었는데, 민망하지만 기획자고, 제가 잘 살고 싶어서 고민을 해왔습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한상엽: 첫 번째 질문은 가볍게 갈게요. 지금까지 일해 오셨던 과정이 평탄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떤 과정을 통해서 지금 하고 계시는 일들을 하게 되셨나요?

김연석: 저는 건축을 전공했습니다. 그래서 건물을 짓는 연습을 많이 했고, 도시를 같이 공부하면서 지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조금 더 옛날로 넘어가면, 예전에 봉사활동을 8년 정도 했던 단체가 있는데 거기서 가르치던 학생이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어요. 그때를 계기로 개인이 바꿀 수 없는 사회적인 문제나 이슈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지역이 인생의 테마로 자리잡은 것 같고요.
10여년 전 정도 전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건축가가 사회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어요. 한계를 많이 느꼈죠. 그 뒤에는 문화기획단체에 들어가서 문화기획을 3년 정도 하면서 문화를 통해서 지역을 활성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전국 각지의 시장을 활성화하는 ‘문전성시’라는 사업이 있었는데 저는 그 중에서 두 개의 사업을 맡아서 진행했습니다. 춘천의 ‘낭만시장’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주문진의 주문진 수산시장 프로젝트 진행했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기획자로 활동하다 보니까 매너리즘에 빠졌던 것 같아요. 제가 그 지역의 주민이나 상인이 아니기 때문에 간격이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저는 시장에서 큰 공연을 많이 했거든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시장에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끌어들이고 그게 재방문으로 연결될 거라는 기대감을 심어주기는 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행사를 하는 날은 사람들의 이목이 공연에 집중되기 때문에 장사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때 내가 직접 상인이 되고 주민이 되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 청년장사꾼을 창업하게 되었어요.
또 한 가지, 사회적 영역에 있거나 문화기획을 하는 사람이 돈을 많이 버는 경우를 본 적이 없어요. 저는 돈을 많이 벌고 싶었습니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좋은 대우를 받고 돈도 많이 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대부분 그렇지 못하죠. 뭐가 문제일까 고민을 많이 하다가, 문제는 잘 모르겠고 좋은 일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벌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장사를 해보기로 했고 지금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한상엽: 실제로 월급을 적당히 주고 계신가요?

김연석: 기간과 직책에 따라 많이 다릅니다. 2년간 직원으로 지내면 독립을 할 수 있는 기본 자격이 주어집니다. 기간 외에 수료해야 하는 과정까지 수료를 하면 본인 매장을 오픈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을 거친 친구들은 월급이 아니라 수익을 분배합니다. 이러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인원들은 아무래도 전원 정식원으로 구성되어 있는 조직의 구성상 많이 주지는 못 합니다.

한상엽: 주한빈 님께서는 일을 시작하신 지 1년 정도 되셨고, 창업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다고 하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원래 서울 분인데 춘천에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주한빈: 저는 강원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했어요. 조경학과에서는 주로 하드웨어적인 블록을 만든다거나 조경에서 이윤을 창출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2012년쯤부터 도시 재생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기면서 소프트웨어적인 접근을 많이 하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쪽으로 많이 관심을 가졌는데, 교수님들께서는 어떤 결과물을 낼 거냐는 질문을 많이 하셨어요. 저는 거기에 대한 대답을 해보고 싶었어요. 인턴 경험을 하면서 제 전공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 휴학하면서 이 지역에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에 같이 일할 친구를 모으기 위해 공고를 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9명 정도 되는 친구들이 활동하고 있고, 다들 학생입니다.
저는 올해 26살로 4학년입니다. 졸업까지 1년 6개월 정도 남은 상황에서 작년에 유럽으로 잠깐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는데, 하루에 만 원 안쪽으로 써도 어떻게 먹고는 살 수 있겠더라고요.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다는, 인생의 마지노선을 정할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까지는 사는 지역에서 지내기는 하지만 그 지역에 애정을 가지는 정도까지 가지는 못했고, 오히려 집에서 떨어져 대학교에 다니면서 춘천에 대한 애정 아닌 애정이 생긴 것 같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춘천에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저희에게 응원을 해주셨고요. 직접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면서 앞으로 이 일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 이걸로 밥벌이는 안 되고요. 그냥 일 벌이기만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양소영: 저는 시작한 지 5년차고요. 사회학을 공부하다 사회적 기업이라는 개념이 한국에 처음으로 도입되던 시기쯤에 사회적 기업에 호기심이 생겼어요. 그렇게 사회적 기업의 중간지원조직 재단에서 잠깐 일을 하게 되어요. 거기서 일을 하다 보니까 중간지원조직의 한계를 느꼈고, 저랑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고요. 특히나 경험이 없는 대학생이 가서 컨설팅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보니까 제 자신의 한계를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나중에 재단에서 일을 하게 되어도 조금 더 경험을 쌓은 다음에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1년 뒤에 거기서 또 일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도 또 생각했죠. 역시 안 맞는다.
저는 왕십리 쪽에서 나고 자랐거든요. 그래서 금호동이나 행당동이 재개발되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는데, 서울이 저한테 큰 메리트가 있지는 않았어요. 굳이 서울이 아니더라도 좋으니 내가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 재단에서 주목하던 곳이 사회적기업 ‘이음’이라는 곳이었어요. 전주에 있는 곳인데, 이음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세 가지가 있었어요. 첫 번째는 지역에서 10년 동안 문화예술 분야 일을 했다는 게 신기했고, 두 번째는 활동들이 꽤 감각적이었고, 세 번째는 구성원들이 20~30대로 젊은 층이었어요. 그래서 이음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하는 프로젝트를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어요.
이음에서 하게 된 프로젝트 중 하나가 전국적인 시장 활성화 사업인 문전성시 프로젝트에요. 각 시장마다 핵심 사업이 있었는데, 남부시장은 청년들을 유입하는 게 목표였어요. 저는 청년몰이 전통시장과 청년을 결합한 첫 번째 시도이자 모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당시 시장에서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계속 했어요. 그러면서 지속성에 대한 고민을 자연스럽게 할 수밖에 없었고요. 남부시장은 어떻게 보면 너무 흔한 시장이에요. 고령화되었고 손님 안 오고. 그런데 남부시장은 도매로 먹고사는 곳이기 때문에 상인들이 변화에 대한 의지가 별로 없어요. 그런 시장에서 저희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시장의 다음 세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 거죠. 이 친구들이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주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약 7~8년에 걸쳐서 한 거예요. 청년몰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한 지역에서 거의 10년 가까이 밀접하게 호흡하면서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시장이 전환기를 맞이하는 시점에 들어가서 일을 하게 되었던 거고요.
저는 그 일을 굉장히 거창하게 바라보지는 않았어요. 내가 시장을 살려야 한다기보다는 되게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저희가 처음에 내걸었던 게 ‘적당히 벌고 아주 잘살자’라는 슬로건인데, 청년들뿐 아니라 저도 그렇게 살고 싶었어요. 저는 장사를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장사는 너무 힘들더라고요. (웃음) 그렇게 시작되었고, 청년몰은 한 3년 반쯤 되었습니다.

지역, 사업, 뿌리내림

한상엽: 청년장사꾼 이전에도 장사를 하겠다고 나선 청년들이 꽤 있었거든요. 청년장사꾼은 예비사회적기업인가요?

김연석: 아뇨. 전혀. 영리기업입니다

주한빈: 일단 저희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려고 세팅을 다시 하는 중입니다.

한상엽: 한 해 매출이 수십억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3년이 안 걸렸잖아요?

김연석: 20억 정도 됩니다. 2년 반만에 달성했죠. 어쨌든 그건 그거고. 저희는 정말 치열하게 일합니다. 저희는 아주 많이 벌어서 우리도 잘살고 너희도 잘살고 다같이 잘먹고 잘사는 게 목표입니다. (웃음) 저희는 하루에 12시간 넘게 일하고, 그만큼 치열하게 해요.
그런데 청년 계층의 한계는 분명히 있습니다.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 요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기술력이 없다는 거예요. 하나를 잘하면 그걸 파서 프랜차이즈화하면 그만인데 저희는 매장이 11개가 될 때까지 계속 테스트를 했어요. 청년 계층의 한계점은 기술과 자본이 없다는 것, 이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기술과 자본이 없으면 사실 사업을 하면 안 됩니다. 열정과 패기로 사업을 하는 건 되게 바보 같은 짓 것 같아요. 그렇게 사업해서 성공한 케이스를 본 적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전략을 짰어요. 자본도 없고 기술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지역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저희는 지역을 살리기 위해서 들어간 게 아니라, 지역에 들어갈 수밖에 없어서 들어갔습니다. 초반에 4,000만원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 돈으로는 홍대 같은 데 못 들어가요. 권리금에 보증금에 인테리어에 하다 보면 1억 우습게 깨지거든요. 권리금 없어야 하고, 임대료 싸야 하고, 임대료가 싸다는 건 보증금도 싸다는 거고, 거기에 인테리어 비용 아끼려면 저희가 직접 일해야 하고. 거대한 포부나 소명 같은 게 있어서가 아니라 저희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없어서 지역에 들어가서 장사를 하는데, 장사가 안 돼요. 상권이 안 좋으니까 임대료가 싼 거잖아요? 그러니까 장사가 잘 되게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러려면 뭘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때 많이 발휘된 게 기획자적 기질 같아요. 그래서 계단장도 만들고 공장도 만들었어요. 문화적인 프로젝트를 해서 우리가 아니라 우리 지역이 유명해지는 효과를 만들기 위해 집중했어요.
시작한 지 1년 반쯤 되었을 때는 회사에 자본이 어느 정도 축적되어서 메인스트림에 들어갈 수 있는 중대형 매장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4억을 투자해 매장을 운영해서는 순익분기점을 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더라고요. 저희가 그 동안 해 왔던 방식과 너무 다르기도 하고. 저는 그게 손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한 번 더 지역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부터는 조금 더 공격적으로 들어갔는데, 그게 지금 저희가 하고 있는 열정도 프로젝트에요. 버려진 인쇄소 골목이 있었어요. 거기에서 장사하는 가게가 딱 두 개 있었는데, 거기에 저희가 모아 둔 돈으로 한 번에 매장 6개를 오픈했습니다. 상권이 아예 없는 곳에 상권을 만들어버리면서 상권을 움직이고 있어요. 똑같은 4억을 투자했는데 원래 1개의 매장을 낼 수 있었던 게 6개의 매장이 되었고, 고용도 훨씬 더 많이 했고, 매출도 그만큼 훨씬 높습니다. 권리금 없이 들어갔기 때문에 거기서 발생하는 권리금도 부수입이 되는 거죠.

한상엽: 문화기획을 하셨던 게 청년장사꾼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되셨나요?

김연석: 아주 많은 도움이 되었죠. 건축학도는 상황을 볼 때 구조를 보는 게 익숙해요. 그런데 기획자는 현상을 보면 계속 그 다음을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이게 재미있게 풀리겠다 생각하는 기질이 있는 것 같아요. 항상 계획적으로 움직여야 하고, 장사할 때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계단장이 구체적인 예가 될 것 같아요. 계단장은 예산이 0원이에요. 운영도 2명이서 해요. 계단장은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플리마켓인데, 한 번 하면 2만 명씩 와요. 웬만한 관공서 행사보다 10배쯤 더 많이 온다고 보면 됩니다. 엄청나게 오는 거예요. 제가 현장에서 현장 콘트롤하고, 다른 사람이 사전에 셀러 선발하고. 2명이서 진행하는 행사인데 몇 천만 원짜리 기획 행사보다 성과가 훨씬 좋죠. 이런 것들이 기획자적 기질이 발휘되는 부분인 것 같아요.

한상엽: 전국에 수많은 문전성시 프로젝트들이 있었는데, 청년몰은 어떻게 소위 전국적인 성공 사례로 발돋움할 수 있었을까요?

양소영: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하네요. (웃음) 청년몰도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고요. 청년몰은 지원사업으로 시작했는데 2013년 12월에 사업이 종료되었어요. 그게 청년몰 1기였다면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운영하는 2기가 진짜 시작이라고 보고 있고요.
글쎄요, 제가 다른 사업을 평가하게 될까 봐 걱정스럽지만, 남부시장의 성공에는 오랜 시간 맺어 온 관계들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해요. 이음과 남부시장 상인회의 관계가 오랫동안 맺어져 있었어요. 남부시장은 전북 지역에서 가장 큰 시장이기 때문에 지원 사업을 제일 먼저 받아요. 그러다 보니까 상인들이 너무 익숙해서 사업에 대한 반응이 별로 없는데, 이음은 문화예술교육 사업이 들어오면 다 시장에서 해보고, 계속 관심을 가져서 신뢰 관계가 있었어요. 청년몰을 만들어 보겠다는 제안을 했을 때 반대를 한 건 오히려 문화체육관광부였어요. 그 당시만 해도 다들 시장과 청년은 만날 수 없는 지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왜 시장 외부 요소인 청년들을 끌어들여서 시장을 활성화하려고 하느냐, 그게 사업 취지에 맞느냐, 이걸로 되게 말이 많았어요. 오히려 상인회에서 해보자고 결정해줘서 시작할 수 있었고요. 그러고 나서 기존 상인들은 상인회가 커버해주고, 저희는 온전히 청년들을 모집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고요. 그 투 트랙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계속 지속성에 대해 고민했어요. 그래서 되도록이면 많은 예산을 직접적으로 주는 걸 피했고요. 지금 32개의 가게가 들어와 있는데요, 처음 12개 가게를 먼저 뽑을 때 빼고는 직접적으로 지원을 해준 적은 없어요. 저희가 집중했던 건 청년몰 내에서 체험 프로그램이나 야시장 개발, 홍보나 정체성을 계속 구축하는 작업들이었고, 그것들도 그걸 진행할 수 있는 지역 청년 그룹들과 협력해서 진행했어요. 언젠가 저희는 빠져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다행히 사업이 종료되었을 때 청년몰이 무너지지는 않았어요. 단지 예산이 없다 보니까 마케팅이 중단되었어요. 지금은 청년몰의 청년장사꾼들이 회비를 모아 1년 예산을 짜서 충당해 나가고 있고요. 단순히 청년들이 시장에 있다고 해서 각광을 받았던 건 아닌 것 같아요.
정말 적당히 벌고 아주 잘살고 싶어요. 그게 극단적인 경쟁에 내몰리는 사람들에게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들을 던져줬던 것 같고, 실제로 청년몰을 자기 삶의 전환점으로 생각하는 분도 많이 오고 계시고요. 이건 장단점이 있어요. 기혼자가 많아 안정적인 구조로 가는 면이 있는데 저는 더 도전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상엽: 청년장사꾼이나 청년몰은 지역적으로 좁은 지역을 커버하거든요. 열정도는 용산, 청년몰은 전주 남부시장. 그런데 청춘은 전체 지역을 보는 것 같고, 상권 활성화도 중요하지만 문화 활성화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춘천이라는 지역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고, 문화적인 접근이 춘천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주한빈: 춘천에는 많은 문화예술 단체들이 있어요. 축제도 많고, 5월이나 8월이 되면 한 달 내내 축제일 때도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의 황무지’라는 말을 합니다. 그만큼 예술가들이 기회가 많지 않은 상황이라고 느꼈고, 그런 상황에서 저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공연장에는 학생들이 문화행사를 해보고 싶다고 접근해서 신세를 지고 있고. 공연자 분들에게도 페이를 드리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어 나가겠다는 생각을 전달해드리고 있고요. 지금은 제가 아니라 올해 새로 들어온 친구들이 팀을 이끌고 있고, 내년에도 그럴 거고, 아마 내후년에도 그러지 않을까 합니다.

한상엽: 계속 청춘에서 활동하실 거예요?

주한빈: 자본이 없다는 걸 너무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요. 결국 저희는 아마추어 단체거든요. 아마추어들이 그렇게 대단한 걸 하지는 못하지만, 앞으로는 전문적인 일도 해보고 싶고. 저도 입에 풀칠을 하면서 계속해서 청춘을 이끌어 나가고 그 외적으로도 이런저런 일들을 펼쳐 보려고 구상 중입니다.

새로운 곳에 터전 잡기

한상엽: 세 분 다 지금 활동하고 계신 곳에서는 이방인이잖아요? 태어난 곳도 아니고 원래 살던 곳도 아니고. 그런 데서 겪으셨던 일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그리고 그걸 잘 해쳐나가는 노하우가 있다면?

양소영: 저는 가끔 친구들이 서울 깍쟁이 같다는 말을 하는데, 이제는 오래 살아서 그런 게 많이 사라졌어요. 지역에 방점을 뒀다기보다 노마드적인 삶을 꿈꿨는데 그 지역이 전주였던 것뿐이었던 것 같아요. 삶의 경유지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에 계속 경계에 있었어요. 스스로도 계속 경계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초반에는 어쨌든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으니까 서울을 그리워하고. 그러다가 5년쯤 되니까 오히려 삶의 결이 겹겹이 같이 쌓인다는 느낌이 들면서 행여 다른 지역에 가더라도 전주가 거점 중 하나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고요.
제가 처음에 겪은 충격 중 하나는 서울에서는 좋은 기획을 만들고 좋은 콘텐츠를 만들면 사람들이 알아서 딸려 왔는데, 전주에서는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해도 아무도 안 온다는 거였어요. 그게 너무 충격이었어요. 전주에는 대학교가 8개 있어요. 전라도의 서울 같은 곳이고, 청년이 많아서 좀 얻어 걸릴 줄 알았는데 안 걸리더라고요. (웃음)
지금 청년몰은 사람들이 그냥 계속 와요. 지난번에는 3개 팀을 뽑는데 80팀이 왔어요. 그런데 청년몰 프로젝트 시작할 때는 조건이 더 좋았어요. 아카데미만 수료하면 가게를 주겠다고 했어요. 지금이면 다 할 것 같죠? 그 당시에는 6명밖에 안 왔어요. 그 6명도 어떻게 어떻게 구하고 구한 거였거든요. 그 6명 중에서도 끝까지 남아 계신 분은 1분밖에 안 계셨고. 그렇게 공간을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죠.

한상엽: 청년몰은 지금도 임대료가 10만원대인가요?

양소영: 지금은 평수가 다 달라요. 보통 회전율을 기준으로 4~5평에 8~10만원 정도 해요. 기술과 자본이 없는 청년들에게 자본을 깔아준 거죠.

주한빈: 저는 처음 시작할 때 춘천시 시문화재단 지원사업에 지원했는데 거기서 떨어졌어요. 그래도 해보겠다고 춘천에서 문화예술하는 분들을 찾아 뵈면서 저희 생각을 전달했더니 애들이 하면 얼마나 하겠느냐 생각하셨던 것 같은데, 그래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주시더라고요. 그래서 해 볼만하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했는데, 춘천에 문화소비자들이 아직까지는 많지 않아서 좀 어려운 것 같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헤쳐나가기 위해서 계속 일을 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꾸준히 하는 게 목표고요.
신기한 게, 지역에서 뭔가 해보겠다고 하면 어떻게 연락이 다 되고 네트워크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더라고요. 그 안에서 시문화재단이 중요한 역할을 많이 해주고 있고요. 청년들을 위한 지원사업이라든지 프로그램들을 많이 만들어주고 자리가 나면 먼저 연락해주기도 하고요. 되게 끈끈하지는 않지만 애매모호한 관계들이 계속 형성되고 있는 게 지금 저희에게 큰 힘이 되고 있지 않나 합니다.

한상엽: 그 이전에는 청춘과 같은 일을 하려고 하는 집단이 없었나요? 분명히 이전에도 비슷한 시도를 한 청년들이 있었을 텐데.

주한빈: 글쎄요? (웃음) 그분들이 저희에게 처음부터 호감을 표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두드리고 다가가면서 열어 가고 있어요. 선배 기획자들이 한 번 해보고 아니다 싶어서 돌아간 경우는 있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저희가 주 콘텐츠로 음악을 잡고 있는데, 기존에 춘천은 연극이나 마임 성향이 강해서 저희에게 마음을 열고 받아들여주는 것도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김연석: 저는 고향은 전라북도 익산이고, 서울 올라와서 20년 넘게 면목동에서 살았어요. 사업을 시작하면서 한남동으로 이사 갔고 거기서 3년 정도 살고 있는데, 20년 넘게 산 면목동에서는 길거리를 걸어가도 인사하는 사람이 없고 슈퍼 아줌마랑도 별로 안 친해요. 제 성격이 나쁜 편이 아닌데, 할 이야기가 별로 없어요. 그런데 3년 살았던 한남동 우사단 마을에 가면 인사 하는 게 일이에요. 아는 사람도 많고. 어떤 곳에 정주한다고 원주민이라고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고요. 그곳에서 어떤 활동을 하느냐, 그리고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원주민과 이방인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이방인들은 많습니다. 지역과 관련된 일을 하겠다는 청년들도 굉장히 많고. 정책적으로 지역을 살리려는 시도들이 제가 보기에는 많아요. 과하게 많다 보니까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지역의 문제는 삶과 관련된 문제에요. 제가 이태원 이슬람 사원 앞에 살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만들었던 ‘우사단단’의 목표는 1주일에 한 번씩 청년들끼리 모여서 술을 먹는 거였습니다. 한두 달 동안 술만 먹었습니다.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관계를 맺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고, 그것을 얼마나 지속하는지가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이런 표현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지역에 들어가서 분탕질을 치는 청년들이 있어요. 하기 싫다는데도 자꾸 와서 하자고 하고. 별로 필요하지 않은 일들을 하는 친구들도 많고.
예전에 어떤 마을 기업 심사에 갔는데, 할머니 군단이 있었어요. 그 분들은 길거리를 지나다니면서 버려진 화분을 그렇게 주워요. 거기다 꽃을 심어서 다시 가져다 놓는 걸 재미 삼아 해요. 그래서 난초 화분에 해바라기가 자라는 기이한 현상들이 발생하는데, 그런 게 저는 훨씬 더 잘 맞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요즘 청년들이 하는 걸 보면 문화적인 프로젝트가 많은데, 그렇게 치고 빠질 거면 안 하는 게 맞고. 할 거면 오래 할 생각으로 해야 해요. 저는 최소한 10년 보고 있거든요.
비법 같은 걸 좀 알려드려야겠죠? 굉장히 중요한 요소인데. 마을 커뮤니티의 중심지는 미장원입니다. (웃음)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에요. 아줌마들이 항상 많은 미장원, 부동산, 슈퍼가 있습니다. 일단 거기를 공략하는 게 가장 중요하고. 눈만 마주치면 인사하세요. 웃으면서 인사하는데 침 뱉는 사람은 굉장히 드물더라고요. 일단 사람들하고 관계를 트는 게 굉장히 중요하고, 나의 거대한 꿈이나 포부를 그 사람들에게 강요해서는 안 돼요. 그 사람들은 그냥 거기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니까. 그 사람들을 재미있게 하는 게 중요하고.
재미가 없으면 저희는 그냥 바로바로 접어요. 계단장을 한동안 안 했던 적이 있었어요. 계단장이 <다큐 3일>에 나온 다음달이었거든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계단을 내려가는 데 150미터씩 줄을 서서 내려가고, 이런 말도 안 되는 풍경들이 펼쳐졌어요. 저는 그 행사를 치르고 나서 일주일 동안 아팠어요. 그 다음달에는 계단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실은 영원히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굉장히 잘 되고 있는 프로젝트였지만, 마을 주민으로서 그건 올바른 행사가 아니었어요. 몇 달 쉬고 홍보도 안 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에는 메스미디어에서 오면 다 거절해요. 우리가 사는 곳이기 때문에. 저희는 요즘에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는 게 목표입니다.

지역을 되살리는 청년

한상엽: 오늘 부제를 지역을 되살리는 청년들이라고 잡아 봤어요. 지금 하시는 일이 정말 지역을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하시거나 혹은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만약 그렇다면 복제가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시는지, 혹은 그렇지 않다면 왜 내가 하고 있는 활동을 통해서 지역이 살아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궁금해요.

김연석: 저희는 지역을 살리고 있습니다. 저는 지역을 살아나는 척도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인 것 같아요. 젠트리피케이션은 안 좋았던 동네가 좋아졌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용어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동네가 좋아지고 난 이후 악영향들이 발생한다는 점이 부각되어 부정적인 맥락으로 쓰는데. 사실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그 지역이 활성화되었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개별적인 주체들의 욕망과 이해관계 때문에 문제들이 생기죠. 장사가 잘되니까 임대료가 올라가고, 건물값도 올라가고, 건물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하면 건물 매매가 활발해지기 시작합니다. 건물이 팔리면 거기 있던 임대민들이 쫓겨나기도 하고. 저는 어느 정도 선까지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자연스러운 생태 흐름이라고 보기는 합니다. 그게 과하면 문제가 되지만. 저희는 현재 남영동, 이태원, 그리고 서촌 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세 지역 모두 굉장히 유명한 젠트리피케이션 지역입니다. 우리 성공했구나 생각하고, 저희도 젠트리피케이션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임대료 꾸준히 올려주고 있고요. 건물이 팔리고 집주인이 바뀌면서 소송 중인 매장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고민하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방법을 찾고 있지는 못 합니다.
복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저희는 하는 일이 되게 많아요. 장사도 하고 문화도 하고 지역도 하고. 하나하나하나는 복제가 가능하지만, 이걸 믹싱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저희도 이 상태로 성장해 나갈 생각은 별로 없고요. 이 중에서 안 될 것 같은 것들을 재단하고, 어느 정도 모양을 만들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한빈: 저희가 긴 시간 활동한 것도 아니고, 지역에 이점이나 영향을 끼친 건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매번 공연자를 찾아내서 공연을 할 때마다 관객에게 공연자를 소개하고, 공연자의 성향 같은 데이터를 계속해서 수집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외부 공연기획 업체에서 공연자를 소개해달라고 해서 저희가 가지고 있던 데이터를 넘겨준 적이 있습니다. 소개받은 공연자는 페이를 받고 공연을 나갔고요.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다 보면 언젠가는 좋아질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헤쳐나갈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양소영: 남부시장에 한정해서 본다면, 상권이 활성화되면 들어온다고 하는 카페가 7개나 들어왔어요. 카페가 그렇게 빨리 들어오는지 몰랐어요. 청년몰만 보면, 청년몰은 가끔 에게 이거밖에 안 돼? 이게 뭐냐,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데, 사실은 거기가 유입인구가 하나도 없던 곳이에요. 시장 사람들도 외면하던 2층의 버려졌던 공간이었거든요.
일단 시장에 유입인구가 굉장히 많이 늘어났어요. 청년몰의 부상도 있고, 한옥마을과 연계해서 남부시장이 자연스럽게 관광 코스로 연결되면서 유입인구가 늘어났는데, 특히 젊은 층의 유입인구가 늘어났고요. 결국에는 고전하던 시장이 긍정적인 이미지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처음에 전주 사람들은 대부분 청년몰이라는 존재를 몰랐는데, 지금은 일단 청년몰의 존재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계시고. 유입인구가 늘어나서 남부시장이 잘되느냐, 그건 다른 문제예요. 남부시장은 생필품 도매 시장이었는데 관광형으로 바뀌고 있어요. 남부시장적으로는 자리를 잡고 성공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고요.
넓게 전주라는 지역으로 봤을 때는 청년들의 비빌 언덕이 된 것 같아요. 초반에는 정말 사람이 없어서 그냥 어찌어찌 다 끌어모았거든요. 자기 삶에 대한 목표나 방향이 정해진 분들이 지역에 내려와서 뿌리를 내리고 싶은데 쉽지가 않죠. 오히려 서울은 치열하지만 그런 면에서 기회가 많은데. 그런 분들한테 청년몰이 기회의 공간이 되고 있다는 게 좋은 것 같고.
저희가 잘 되었던 이유 중 하나는, 관에서 전혀 관심을 안 가져주셨어요. 너무 감사하게요. 시랑 문광부랑 매칭해서 하는 사업인데, 저희 대표님이 난리를 치는 바람에 시에서 저희를 잘 못 건드렸어요. 사업도 잘 안 주지만. (웃음) 어쨌든, 독보적인 섬처럼 살았어요.
저는 단순 복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이걸 모티브로 삼아 지역성을 살리면 얼마든지 변형할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각 지역에 맞게 청년몰을 벤치마킹하는 좋은 사례들이 있고요. 단순하게 청년들을 때려 넣는 사업은 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청년과 상인은 시장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 가야 하기 때문에 관계나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상엽: 김연석, 양소영 님 두 분께 꼭 드리고 싶은 질문이 있어요. 장사를 직접 하고 계시고 장사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계신 입장에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고, 혹시 대안이 있다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여쭙고 싶어요.

김연석: 저는 쫓겨났다는 말이 불편해요. 쫓겨나신 분도 계시지만 되게 적어요. 우리나라 법에 생각보다 안전장치가 많습니다. 아무렇게나 막 쫓아내기 어려워요. 열정도 자리에서 10년 정도 장사하셨던 상인 한 분이 20평짜리 가게를 권리금 4,000만원을 받고 빠지셨는데 저는 그게 합리적인 판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상권이 부흥하고 있는데 장사로는 승산이 없으니까 권리금 받고 빠지는 게 현명한 판단이죠.
홍대 상권이 상수, 합정, 연남, 망원까지 진입하고 있습니다. 처음 홍대 상권이 확장되기 시작할 때는 쫓겨나는 경우가 꽤 많았어요. 그리고 홍대 건물주들이 그런 과정을 통해서 굉장히 영약해졌고요. 그 사람들이 영약해진 만큼 상인들도 굉장히 영악해졌습니다. 권리금을 받고 상권을 이동하며 돌아다니는 권리금 장사꾼까지 생기고 있습니다.
상권이 커지기 시작하면 ‘세 바퀴 돈다’는 표현을 쓰는데요. 처음 자리를 잡았던 분들이 가게를 팔고 나가고, 두 번째 들어오는 분들이 권리금을 준 만큼 장사를 잘하고 나가고, 세 번째 들어가는 분들은 폭탄을 끌어안고 들어가요. 지금 경리단이나 서촌 들어가시는 분들은 세 번째 텀이에요. 지금 들어가면 큰일 납니다. 10평 정도 되는 게 1억 정도 해요. 권리금까지. 말도 안 되는 금액이거든요.
저는 젠트리피케이션이 그렇게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요즘 조금 우려되는 부분이 한 가지가 있기는 합니다. 예전에는 이 사이클이 3년 정도 됐어요. 뜨는 데 2~3년, 쇠하는 데 2~3년. 이렇게 5년 정도 주기로 움직였는데 요즘에는 3년이면 돼요. 1년도 안 되어서 뜨고, 1년도 안 되어서 확 무너지고. 합정 뜬다는 이야기 들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바로 연남으로 넘어갔고. 요즘에는 또 망원 쪽 이야기가 엄청 들려요. 홍대에 오는 사람은 정해져 있는데, 그건 파이 나눠먹기거든요. 정직하게 물건을 팔아서 많은 이윤을 남기겠다는 장사의 근본적인 본질을 지키는 게 아니라, 부동산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연남동 가면 닐리리맘보 장사 열심히 안 하고 컴퓨터나 하고 있는 친구 많은데, 그런 친구들은 백이면 백 권리금 받고 빠질 친구들이죠.

한상엽: 외람되지만 이 다음에는 어디가 뜰까요? 열정도?

김연석: 열정도는 이미 오를 대로 오른 동네였어요. 상업지구랑 엮여 있어서 지금 평당 4,000만원입니다. 그 정도면 서울에서 탑클래스거든요. 저희는 알고 들어갔어요.
서울에서 뜰 만한 지역 몇 개 있죠. 알려드릴까요? (웃음) 저는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인데, 후암동이 제가 유심히 보고 있는 동네 중 하나입니다. 숙명여대 윗쪽이고요, 해방촌하고 연결되어 있습니다. 경리단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건 그 앞에 있는 미군기지가 재개발된다는 계획안이 나왔을 때부터였어요. 그게 지금으로부터 한 4년 전이고, 저도 그때 관심을 가지고 그 동네를 오랫동안 지켜봤습니다. 그러다가 2012년 중순쯤에 조선일보에서 경리단에 재미있는 가게들이 많다고 크게 한 번 때려서 한 번에 우르르 떠버렸죠. 미군기지는 어쨌든 개발이 됩니다. 계획이 구체적으로 나오고 있어요. 그곳에 면해 있는 지역이 3개가 있습니다. 경리단길하고 해방촌, 그리고 반대쪽 후암동입니다. 이건 불 보듯 뻔해요. 처음에 삼청동이 떴고, 그 다음이 위쪽으로 올라가서 북촌이 떴고, 그 다음에 서촌이 떴거든요. 이런 순서대로 옮겨 가는 거죠. 이건 뻔합니다, 후암동은 뜰 겁니다. 언제 뜰지는 장담하기가 좀 어렵고요. 5년 안에는 뜨는데, 5년 버틸 자신이 있으면 들어가는 겁니다.

양소영: 저도 적정한 수준의 상권 발달은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고요. 저희가 처음 청년몰에 바랐던 것은 청년장사꾼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점포를 기반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거였는데, 막상 해보니까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청년몰은 몇 가지 특이한 게 있어요. 그 중에 일주일에 한 번 정기휴일을 정해서 쉬고, 영업시간을 1일 8시간 준수하는 게 있어요 사람들은 한 가게만 닫혀 있어도 그 가게가 닫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청년몰이 닫았다고 생각하거든요. 또 한 가지 특약이 권리금을 받지 않는다는 거예요.
남부시장은 굳이 청년몰 때문이 아니라, 밑에서 야시장도 하고 뜨고 있어요. 야시장은 거의 만 명 만오천 명 정도 오고. 한옥마을이 워낙 잘되잖아요. 아예 코스로 만들었어요 시장을. 그러면서 시장 상권이 살아나고, 카페 같은 거 들어오고.
사실 저는 굉장히 속상했어요. 상권이 활발해지는 건 바라지만 이런 모습은 바라지 않았는데, 터줏대감 가게들이 떠나가고 있어서 저 혼자 슬퍼했어요.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해서 책을 만들어 볼까 이런 고민들을 했는데, 가게 내놓으신 분이 싱글벙글하는 거예요. 되게 비싸게 팔았고, 벌써 크루즈 여행을 예약해 놓으셨대요. 너무 좋아하면서 가시더라고요. 상인들 입장은 또 다른가 보다 싶었어요. 그 분들이 혁신적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되기 어렵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청년몰은 계획경제예요. 저희가 꽉 잡고 있었어요. 청년몰 안에서는 아이템도 겹치지 않게 뽑고요. 그런 고민들은 있어요. 야시장도 아직까지 제가 관리하고 있는데, 야시장도 품목을 제한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게 언제까지 갈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야시장도 계속 확장을 해나갈 거고, 청년몰도 누구 한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적으로 적정한 보완을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해요. 지금 상인회는 협조적이지만 회장이 바뀌기라도 하면 청년몰을 아무도 보장해줄 수 없는 거예요. 장기적으로 10년. 20년 계약을 청년몰과 상인회가 맺고 그 안에서 규칙은 청년들이 정하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도 하고 있고.
적당히 벌어 아주 잘살자는 건 결국 함께 잘살자는 거였고, 무한경쟁을 하기보다는 상생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청년몰은 공간이 좁아요. 가게가 32개가 나올 수 있는 공간이 절대로 아닌데 쪼개고 쪼개서 제일 좁은 가게는 2평도 돼요. 커 봤자 5~6평밖에 안 되는 가게들이 모여 있거든요. 그런 곳에서 아이템을 피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이제는 아이템 규제를 풀자, 이게 우리가 발전하지 못하는 길이라고 자성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요. 그런 것들에 대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고. 그렇습니다.

한상엽: 주한빈 님께. 춘천이라는 곳에서 청년으로서 쉽지 않게 활동을 해나가고 계신데. 굳이 음악을 중심으로 활동하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하셨나요? 온갖 문화 기획 다 하는 게 적절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고 지역에서 원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음악 중심으로 활동하시는 것에 대해서 여쭙고 싶어요.

주한빈: 일단 춘천은 젠트리피케이션 청정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웃음) 재개발 열심히 하고 있고 좋은 아파트 많이 지으려고 노력하고, 괜찮다 싶은 동네들을 마구 허무는 중이고요. 시에서는 문화예술적으로 많이 시도해보려고 하고 있기는 한데, 뚜렷하게 보이는 건 양평에 있던 ‘월드DJ페스티벌’ 하나 가져온 정도인 것 같고. ‘닭갈비축제’ 같이 지금까지 해오고 있었던 축제들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춘천에는 강원도청과 시청이 있고, 공무원이 많다 보니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인구가 좀 밀집해 있고, 20대 때부터는 외지로 나가서 생활해요. 더 높은 연령대는 공직에서 활동하다 보니까 문화 관련 행사는 초대권을 많이 받아요. 그래서 문화적 소비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을 못하는 것 같아요.
기존에는 연극이나 마임 같은 쪽이 성황했는데, 저는 단순히 음악이 좋아서 이 일을 하고 있고요. 제가 춘천에 있고 음악에 대한 활동이 없는 상황에서 기회를 만들어 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서 음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밴드를 해봤고요.
여러 가지 손대게 되면 기술적인 면에서 부족할 거라고 느꼈고요. 앞으로 더 해볼 수 있으면 해보겠는데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한상엽: 솔직하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하고요. 여러분께 궁금한 게 있으시면 질문을 받아드리고 오늘 이 자리 마무리하겠습니다.

자유 질문

방청객: 혹시 아파트 장터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기존의 장터가 너무 더럽고 비위생적이거든요. 현실적으로 잘 맞는 장터가 들어오면 좋을 것 같아요. 혹시 아파트 장터 기획을 제안해드리면 생각이 있으실까요? 아니면 조언해이라도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기존 아파트 장터가 뒷거래도 많고 음식도 맛이 없잖아요.

김연석: 아파트 장터는 부녀회가 꽉 잡고 있어서 잘 안 들어가는 걸로 알고 있고요. 제안을 많이 받는 편인데, 저희는 지역을 벗어나서 장터를 하는 건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저희는 동네가 특이해요. 재개발구역이고 오랫동안 낙후되었던 지역이다 보니까 임대료가 싸서 젊은 예술가들이 많이 들어와서 살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예술가가 중심인 장터를 하고 있고요. 아파트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즐겨 하는 것들이 상품이 되고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기획자 베이스의 아트마켓 같은 것들이 이상한 데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더럽고 비위생적인 상품이 퀄리티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실은 그게 그 아파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컨펌하는 건 아파트 주민들이에요. 커넥션이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커넥션을 끊어내지 못하면 변화가 있어도 유지될 수 없어요. 커넥션을 외부에서 끊을 수는 없거든요. 커넥션을 내부에서 끊으면 장터를 새로 구성하면 되죠. 아파트 주민들에게 설문을 할 수도 있고. 훌륭한 기획은 그곳에 맞는, 그 사람들이 원하는 기획이지 내가 좋아하는 기획은 아닌 것 같아요. 내가 예술가니까 예술가의 기획을 강요하고, 이런 거만한 태도의 기획자들 되게 많거든요. 사람들이 만족해야 기획이 성공하는 거지. 내가 만족한다고 해서 기획이 성공하는 게 아니잖아요. 마찬가지죠. 그 사람들이 원하면 품바를 부를 수도 있고요. 눈높이에 맞추는 기획이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합니다.

방청객: 최종적으로 잘사시는 게 목표잖아요? 그러려면 경제적인 것도 필요하겠지만, 자영업은 자기 시간이 정말 없잖아요. 직원들뿐만 아니라 대표님은 그런 균형을 어떻게 맞추고 계신가요?

김연석: 일단 저는 요즘 매장에서 일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저는 아침 10시쯤 사무실로 가서 12시쯤 집에 들어가는데요. 시간은 없어도 자유롭게 쓰는 편이기는 하고요. 이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사업이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중이고 아직은 시작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고요. 저는 처음에 장사를 시작할 때도 평생 매장에서 일을 해야겠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길어야 2년? 더 길면 3년? 그 이후에는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게 더 잘 맞는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 구조를 저뿐만 아니라 저희 직원들에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새로운 시스템을 짜고 있어요. 시즌 2죠.

한상엽: 마무리를 하면서 각자 질문을 하나씩 드릴게요.
양소영 님께서는 지역에서 지원 활동 통해 청년들이 활동을 잘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장사가 있을 거고, 그들의 삶이나 공동체를 만들어주는 부분이 있을 거고, 혹은 그들과 지역사회가 융합되게 하기 위한 활동들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 시점을 종합해서 말씀해주시면 좋겠고요.
주한빈 님께는 이런 지원이 있으면 좋겠다는 정책이나 지자체의 지원사업, 이런 게 있으면 좋겠다 하는 것에 대해서.
김연석 님께는 앞으로의 계획을 여쭙고 싶었어요. 큰 요식업회사를 만들고 계신 과정이라고 보이기도 하지만 워낙 문화기획을 많이 하셨기 때문에 문화와 지역과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는데요.

양소영: 일단 저는 지원자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기획자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냥 청년몰이라는 거점을 통해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들은 장사를 했던 거고, 저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한 것 같고요.
청년몰은 사람이 많아졌어요. 처음에는 12명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40명쯤 되요. 아직도 정할 게 너무 많아서 날 잡아서 가게 쉬고 MT를 가는데, 작년에 갔을 때는 질문지의 반절밖에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6시간 지나버려서 흐지부지 헤어졌어요. 한 번 이야기하는 것조차 어려워진 상황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어울리는 사람들은 끼리끼리 놀아요. 초반에는 청년몰 안에서 서로 눈치 보는 게 있는데, 그걸 해소할 수 있는 접점이 같이 밥 먹는 거였다고 생각해요. 장사가 안 되기도 했고, 많은 시간들을 저희끼리 보내야 했어요. 같이 밥을 먹으면서 초기 장사꾼들은 매출 격차 같은 불평등한 요소들을 해소했던 것 같아요. 회의에서 갈등이 있을 때 몇몇 분들은 그런 말을 해요. 우리 식구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규모가 너무 커져서 어려운 부분이 있죠. 저는 3년 동안 일하면서 제가 주도적으로 하는 행동이 옳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뒤로 빠져서 서포트만 해요. 많은 부분들을 본인들이 해결해야 하다 보니까 3년 전에 나타나지 않았던 갈등들이 지금 와서 표출되고 있어요. 그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굉장히 흐뭇한 부분도 있어요. 청년몰의 흐름은 분명히 있고 자기만의 걸음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청년몰 대표조직을 만들기 위해서 회의를 일주일에 한 번씩 하고 있는데 그 흐름과 외부, 특히 남부시장의 흐름이 좀 달라서 우려가 되기는 하지만 지금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고요
최근에는 야시장이라는 새로운 상권이 생겼어요. 재미있는 건 청년장사꾼들이 그런 말을 해요. 쟤네 뭐냐고. 불과 3년 전에는 청년몰에 대해서 상인들 반발이 얼마나 심했는데요. 자기들도 약간 어느 정도 상인적인 마인드를 내재화하고 있다는 변화가 있고요. 가치관을 맞춰 나가는 작업들을 1년 동안 지지고 볶고 싸우면서 많이 했고, 이제는 적어도 진짜 낮은 단계의 적당히 벌어서 아주 잘살자는 건 공유된 상태에요. 처음에는 굉장히 반발이 컸어요. 그게 지금은 청년몰의 색깔이 되었다는 걸 누구도 부인할 수 없고, 오히려 그 색깔을 지켜나가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청년몰이 한편으로는 관광지화가 되어서, 1년이 지나서 본인이 생각하는 청년몰과 달라서 빠져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아마 올해를 기점으로 좀 바뀔 것 같은데, 저도 청년몰의 변화는 어느 정도 되돌릴 수 없다고 생각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제가 큰 프로젝트들을 하다 보니까 조금 더 손에 잡히는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저도 전주에 뿌리를 내려 볼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어요. 전주에 또 집값 싼 데가 있어요. 거기 알아보고 있고. 청년몰을 시작으로 많은 청년들이 청년몰로 모여들고 있는데 그 청년들을 다른 방법으로 품어줄 수 있는 공간을 조금 작지만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주한빈: 카우앤독 같은 공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아직 어린 나이고, 제가 대학생이고 26살이기 때문에 이런 돈도 안 되는 일을 시도해 보고 그 다음 단계를 시도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여기 오신 분들은 저를 카피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파트 장터에 말씀을 덧붙이자면. 저도 세련되고 좋은 공연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지만, 관객들은 그걸 보고 좋아하지 않아요. 춘천에서는 공원에서 에어로빅을 하면 아주머니들이 150명 정도 모여서 칼군무를 춰요. 그런 걸 볼 때마다 내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소비자에 대한 생각을 더 신중하고 깊이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요.

김연석: 저희는 이제 프랜차이즈를 시작합니다. 5개 정도를 동시에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 2, 3개만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 같은데. 요즘에는 맥주를 하나 만들고 있습니다. 청년장사꾼 이름을 달고 나오는 맥주가 아마 올해 안에 나올 것 같고요. 푸드트럭도 한 대 만들고 있습니다. 이건 그냥 놀려고 만들고 있습니다. 푸드트럭을 하고 싶다는 직원들이 많아서 푸드트럭을 하면 망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웃음) 아직은 조사 단계입니다. 재미있게 장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만 가지고는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재미와 실리를 다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간지점이 어딘지는 잘 모르겠고요. 저는 몇 백억 대 자산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제가 기준으로 삼고 있는 금액은 약 50억 정도입니다. 굉장히 큰 돈이긴 한데 목표로 삼을 만큼 큰 돈은 또 아니잖아요? 저는 한 50억 정도까지만 벌면 일을 그만 할 생각입니다. 최대한 그 기간을 줄이기 위해 노력할 거고요.
청년장사꾼이 하고 있는 일은 장사, 지역에서 하는 문화적인 활동, 그리고 교육이 있습니다. 무상으로 진행하던 2주 교육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지금은 종료되었습니다. 유상으로 진행되는 창업 컨설팅 교육은 2회차가 진행되고 있고요. 장사를 하는데 교육 프로그램도 있고, 거기에 지역과 문화 같은 코드가 있어 다시 뭔가를 준비하는 건 재미있잖아요?
프랜차이즈 하면 보통 망해요. 창업 비용도 너무 많이 들고, 프랜차이즈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관리적인 측면에서 케어 받는 게 불가능하거든요. 국내 프랜차이즈 시장에서 케어해주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그럴 거면 내가 왜 프랜차이즈를 하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에요. 강하게 구속해서 반항을 못하게 하거나 아무 것도 안 해서 기대조차 하지 않게 합니다. 결국 개인의 역량으로 극복할 수밖에 없는 시장이 프랜차이즈 시장이거든요. 그거 보면서 안타까웠어요. 정말 단순한 건데, 알기만 하면 할 수 있는 건데, 그리고 하기만 하면 매출 오르는데. 되게 단순한 로직들이 있거든요. 이것도 안 하는 건 몰라서인 것 같아서, 교육이 주도하는 프랜차이즈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희는 서울경기 지역부터 점령하기 시작해서 제주산간 지방까지 나가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고. (웃음) 돈 많이 벌겠습니다.

한상엽: 오늘 저희가 지역을 되살리는 청년들이라는 부제로 이야기를 나눠보았는데. 이 긴 시간 동안 함께해주셔서 감사하고요. 하시는 일들 다 잘 되시고, 각자의 지역에서 좋은 모델들과 좋은 지역들을 만들길 바라면서 오늘 이 시간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