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보그걸

vogue girl 2015 12

2002년부터 14년간 발행되었던 「보그걸」 이 2015년 12월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되었다. 소녀 시절을 대략 학창 시절로 계산해보면 중・고등학교 6년, 대학교 4년, 합이 총 10년이다. 약 두 세대 동안 소녀들의 유행을 알리던 잡지가 사라진 셈이다. 내가 중학교 입학할 때쯤 발행되었던 잡지가 ‘몇 명의 소녀들’로 가득 찬 두툼한 화보를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니 지금껏 내가 크게 인식하지 못 했던 내 ‘소녀’ 시절도 정말 끝난 기분이다.

그전에 ‘소녀’에 대해 좀 짚어보자면, 여자라면 누구나 생물학적으로 소녀 시절을 겪는다. 하지만 그 시기에 정신적으로도 소녀의 정체성을 갖고 사는 사람의 수가 과연 나이를 기준으로 잡은 통계 속 소녀 인구수와 같을까 의문이다. 소녀 또는 소녀 시절이란 마치 누구나 있을 것 같지만, 실은 영화 속의 그럴듯한 첫사랑만큼이나 현실에서는 까마득한 존재다. 분명 나도 소녀였던 나이를 거쳐왔는데 도무지 소녀였던 기억이 없는 건 첫사랑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소녀를 둘러싼 환상 속의 이미지 탓이다.

풍부한 감수성에 여린 마음, 예쁘고 귀여운 걸 좋아하며, 나긋나긋한 태도와 여리여리한 체형을 가져야만 소녀 타이틀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은 대체 어디서 나온 고정관념일까? 이를 미워하기 위해 이 고정관념의 출처를 찾아보니 TV, 라디오, 신문, 잡지, 영화, 드라마, 온갖 매체가 탈곡기에서 곡식 나오듯 탈탈 털려 나왔다.

“이게 단순한 잡지 같아? 이건 희망을 주는 등대야!”
–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중에서

괜한 오기 가득했던 사춘기 시절엔 미워하는 것을 더욱 미워하기 위해 일명 ‘탈곡 리스트’를 만들어 열심히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중 이 리스트에서 가장 큰 편견을 갖고 있었던 패션 잡지를 집중적으로 파보았는데 의외로 패션잡지 속 소녀의 모습은 매우 다양했다. 내가 몰랐던 수식어로 가득한 소녀의 모습을 위한 패션, 뷰티 화보와 각종 피처 기사는 ‘소녀가 되지 못해 억울했던 소녀’의 속을 달래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물론 잡지 속 소녀를 완성시키는 아이템은 현실의 소녀가 쉽게 살 수 없는 가격의 제품들이다. 하지만 ‘잡지는 희망을 주는 등대’라는 나이젤의 대사처럼, 패션과는 거리가 먼 곳에 살고 있는 소년, 소녀들이 런웨이를 읽고 새로운 꿈을 꾸며 가능성을 찾을 수도 있다. 다른 삶에 대한 가능성과 그걸을 만들기 위한 프로들의 노력을 시각적으로 담아주는 잡지엔 생각 보다 넓고 깊은 세계가 있다.

「보그걸」 폐간호에 실린 에디터의 말을 빌리자면 이것은 여행의 끝이 아니라 과정이며, 끝이라 한들 여행의 수많은 과정 중 하나가 끝난 것이다. 모든 여성들의 소녀 시절도 이런 것이었으면 한다. 소녀 시절이라는 여행 기간이 분명 있었음을 기억하고, 오래전에 끝났다 한들 이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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