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설명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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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드는 소설을 만나면 마치 정해진 수순처럼 소설가에 대해 궁금해지곤 한다. 작가를 실제로 만나볼 수 없으니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묘연하다. 그럴 때는 에세이를 찾아본다. 그래서 하루키가 쓴 거의 모든 에세이를 섭렵하고야 말았다. 그곳에선 작가가 아닌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하루키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매일 일정한 분량의 글을 쓰고, 달리기를 하고, 재즈 음악을 듣고, 야구 관람을 즐기고, 레이먼드 카버를 존경하고, 비치 보이스를 좋아하고, 맥주를 즐겨 마시고, 취미로(!) 번역을 하고, 좋아하는 굴 튀김을 앞에 놓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을 보다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발견했다. 한 독자가 그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얼마 전에 취직시험을 봤는데, 그때 ‘원고지 4매 이내로 자기 자신에 관해 설명하시오’라는 문제가 나왔습니다. 저는 도저히 원고지 4매로 저 자신을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건 불가능하지 않나요, 혹시 그런 문제를 받는다면, 무라카미씨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에 대한 그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안녕하세요. 원고지 4매 이내로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제 생각에 그건 굳이 따지자면 의미 없는 설문입니다. 다만, 자기 자신에 관해 쓰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예를 들어 굴 튀김에 관해 원고지 4매 이내로 쓰는 일은 가능하겠죠.

그렇다면 굴 튀김에 관해 써보는 건 어떨까요. 당신의 굴 튀김에 관한 글을 쓰면, 당신과 굴 튀김의 상관관계나 거리감이 자동적으로 표현되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 그것이 이른바 나의 ‘굴 튀김 이론’입니다.

다음에 자기 자신에 관해 쓰라고 하면, 시험 삼아 굴 튀김에 관해 써보십시오. 물론 굴 튀김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민스 커틀릿이든 새우 크로켓이든 상관없습니다. 도요다 코롤라든 아오야마 거리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든 뭐든 좋습니다. 내가 굴 튀김을 좋아해서 일단 그렇게 말한 것뿐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자기 자신을 원고지 4매로 설명하라고 한다면 정말이지 나 역시 쓰지 못할 것 같다. 그의 말처럼 어쩌면 그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글을 읽다 보니 ‘굴 튀김 이론’이야말로 그 어떤 자기소개보다 자신을 설명하기에 적절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무엇에 관해 이야기하면 나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제일 먼저 ‘여행’이 떠올랐다. 하루키가 굴 튀김을 좋아하듯 나는 여행을 좋아하니까. 나에게 여행은 ‘굴 튀김’인 것이다.

연말이 되니 올 한 해를 돌아봄과 동시에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한 일, 해야 할 일, 그런데 하지 못한 일. 그런 일 대신 올해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려보았다. 그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속에 내가 보였다. 내년엔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가 보였다.

며칠 뒤에 친구들과 짧은 연말 여행을 떠난다. 요즘 굴이 한창 제철이라니 숙소에서 굴 튀김이나 해 먹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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