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가 주는 다정하고 개별적인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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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뿐만 아니라 책을 만나는 데에도 타이밍은 분명히 존재한다. 가을 초입에 사 두고 책장에만 꽂혀 있던 이성복 시인의 시론 「극지의 시」를 읽은 건 몸과 마음이 한없이 극지로 몰린 듯한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5초 만에 눈물 흘리기 개인기 대회’ 이런 데 출전해도 될 것처럼 힘들었던 시간, 이 책은 어떤 경전보다도 어른의 충고보다도 내 마음을 다독여주고 힘을 주었다.

「극지의 시」는 시에 대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인간의 삶에 대한 태도에 대한 가르침, 영성지도의 역할까지 겸한다. 한없이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나의 현실 문제를 활자를 통해 이토록 다정하게 위로받고 갈 길을 찾다니. 읽음이라는 행위의 값짐을 이 연말, 다시금 경험한다.

길게만 느껴지는 아이의 병원 진료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아이는 색칠공부를 하고 나는 이 책을 읽었다. 내내 긴장하고 굳어 있던 나는 아이가 가장 안 쓰는 색깔의 색연필을 빌려 줄을 그으며 책을 읽었다. 그러자 곧 나에게 관심이 쏠린 다섯 살 아이는 자신이 줄을 그어보겠다고 했다. 아이의 비뚤비뚤한 줄이 이 책의 활자들의 아래위를 관통했고, 아이는 그동안 늘 만져보고 싶어 했으나 무한 낭비를 이유로 거절당했던 색색의 포스트잇을 떼어 줄이 그어진 페이지에 붙이며 황홀해했다. 이런 문장들이었다.

“시를 쓰는 건 우리에게 불리한 진실과 맞닥뜨리는 거예요. 그게 올바름이고 그게 아름다움을 낳는 거예요…” p.102

 

“당대 유종원의 글에 나무 잘 심는 사람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의 비결은 간단해요. 그저 물이나 주고 무심하게 내버려 둔다는 거예요.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오늘은 얼마나 컸나 확인해보느라 싹을 다 죽인다는 거지요…

시 쓰는 일도 사람 가르치는 일도 같은 이치예요. 우리가 실패하는 건 대부분 자신의 의도대로 성급하게 목적을 이루려 하기 때문이에요. 그럴 때 억지 강(强) 자를 써요. 강도, 강간, 강요, 강매, 강탈….

사물이나 사건이 제 본모습을 드러내는 그 순간은 반드시 와요. 그걸 믿어야 해요. 그러나 끝까지 지켜봤는데도 그 순간이 안 올 수도 있어요.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에요. 그래도 어떻든 그렇게 믿고 하는 수밖에 없어요. 왜? 보들레르 식으로 말하면, 글쓰기란 내가 지금 여기 존재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내가 누군지 알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글 쓰는 사람이 그 일을 제대로 할 때, 읽는 사람도 자기가 누군지 알게 되고, 자기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요.” p.107

여기서의 ‘글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설명되겠지만, 다른 상대적인 역할들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또는 키우는 사람과 키워지는 사람. 그 관계 속에서 때로는 불리한 진실에 맞닥뜨린다 할지라도 그 본모습이 드러날 순간을 믿고 기다리는 것.

아이를 기다리며 나는 책에 서툴게 쳐진 줄을 응시했다. 평소에 나는 책에 줄을 치며 읽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이 비뚠 줄은 기억해 둘 만한 가치가 있다. 언젠가 아이는 자를 사용하는 법을 알게 될 것이고, 자 없이도 꽤 곧은 선을 그릴만큼 손가락에 힘이 생겨날 때가 올 테니 말이다. 진료가 끝나고 우리는 아주 달고 열량이 높은 아이스크림을 함께 퍼먹었다. 몸과 마음에 에너지가 차오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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