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을 찾는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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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내게 가을이 왔다고 알려준 건 단풍도, 하늘도, 옛사랑의 추억도 아닌 청첩장들이었다. 청첩 모임에서 처음에는 안부와 축하가 오가지만 어느새 이야기는 살인적인 서울 집값과 소위 ‘남들 다 하는 만큼만’ 하느라 허리가 휘는 결혼식으로 이어진다. 뒤이어 전쟁 같은 육아와 교육, 취약한 복지제도 그리고 최근 대두된 ‘수저 계급론’까지 언급될 때쯤 누군가의 한 마디로 곧 침묵이 찾아온다. “한국은 답이 없어.”

누구 하나 반론을 제기하지도 돌파구의 존재 가능성을 입에 올리지도 않는다. 어느새 비관주의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리라. 되려 희망을 말하는 게 구질구질할 지경이다. 이러한 지금의 대한민국에 대해 푸른 눈을 가진 청년이 냉철한 분석과 신랄한 비판, 그리고 애정 어린 충고를 건넨 책이 있다. 바로 다니엘 튜더의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서양 좌파가 말하는 한국 정치」다.

사실 오늘날 한국 사회에 대한 튜더의 진단은 새롭지 않다. 색깔론 외에 제대로 된 철학을 갖추지 못한 보수와 진보 진영, 정책 대신 수사만 난무하는 선거문화, 뿌리 깊은 세대갈등, 사회적 합의보다 반목을 부추기는 언론 등. 하지만 외신기자 출신이라는 저자의 배경 덕분에 새롭지 않은 진단 또한 식상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영국인인 튜더는 영국을 포함하여 미국, 독일 등 다른 나라의 사례를 풍부하게 제시한다. 이는 논조에 맞게 외신 기사를 선택 및 가공하는 한국 언론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내용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 상황을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보다 큰 흐름에서 읽을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또한 외신기자로서 경험한 각계 인사들과의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한 그의 비판은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그중 몇몇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부끄러워지면서 그동안 무뎌졌던 비판의식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물론 저자가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서양 국가에서 온 백인 남자에, 옥스퍼드에서 공부했다는 사실 때문에 그의 비판을 되려 비판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역시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이에 대해 여러 번 독자들에게 주의를 준다.

파트 2 「우리는 시민인가」에서는 정당보다는 인물에 열광하는 영웅주의, ‘잊지 않겠다’던 약속도 잊어버리는 냄비 현상 그리고 합리적인 비판 대신 손쉽게 취하는 음모론 등을 주제로 한국 시민의 민주주의적 자질에 대해 지적한다. 이 역시 많이 논의된 내용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제3자에 의한 비판인지라 즉각적인 거부 반응이 덜한 편이다. 물론 지적 자체도 깊이 새겨들을 만한 내용이다.

“음모론은 힘없는 자들의 마지막 피난처일 수 있으나, 힘없는 자들을 계속 힘없게 만들기도 한다. 물론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 크게 실망할 만하다. 먹을거리의 안전성 문제도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시각에 들어맞는다는 이유로 가능성은 있지만 개연성이 적은 음모론을 맹목적으로 믿어버리면 나의 주장과 논리가 통째로 설득력을 잃을 수 있다. 분노할 거라면 합당한 근거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p.103

저자의 이야기 중 무엇보다 가장 귀담아들을 만하다고 생각한 내용은 ‘제조업이 한국의 미래다’는 꼭지다. 본문에 따르면 현재 서비스업으로 산업 구조를 전환하려는 한국의 경제 발전 모델은 소득과 기회의 불균형, 빈곤, 복지 의존 등의 심각한 부작용이 뒤따른다고 한다. 고임금과 저임금 일자리로 이분화된 서비스 산업은 부의 고른 분배를 막는다.

그리고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제조업은 지역 균형 발전에 기여하고 생산성 향상도 높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렇다고 제조업 일변도의 경제 모델만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고급 제조업과 서비스 산업이 동반 발전하고 있는 스위스나 독일의 경제 모델을 모범 사례로 삼을 것을 제안하며 교육 제도 개선, 중소기업 지원, 노조 문화 변화 등 구체적인 방안 역시 제시하고 있다.

“내가 한국에 무엇을 제안할지는 이제 뻔하다. 영국은 이미 많이 늦었지만, 내 생각에 한국에는 아직 10년 정도 시간이 남아 있는 것 같다. 미국·영국식 모델에서 스위스·독일식 모델로 선회하려면 문화, 교육, 경제 방면에서 상당한 변화를 이뤄내야 한다. 하지만 목표의 절반만 달성해도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큰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 나라에서 수도권 아닌 지역에 사는 서민들의 삶을 비교해보면 점점 그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p.178-179

워낙 많은 문제가 얽혀있는 이슈인만큼 저자의 이러한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국이 가야 할 큰 방향성이라는 틀에서 곱씹어볼 만한 내용이므로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중 해당 꼭지는 일독을 꼭 권하고 싶다.

요 근래 한국 사회를 보노라면 정치가 실종된 자리에 아집과 반목, 대립이 가득하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슬프게도 절망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환멸과 냉소 뒤에 숨지는 말기로 하자. 우리가 누군가와 사랑하고, 시간을 함께 나누고, 혹은 새 생명을 데려올 곳은 결국 바로 여기니까.

내년 봄에도 가을에도 나는 청첩장을 받을 테고, 연인들이 미래를 속삭이는 수많은 밤이 이어질 것이다. 설령 최근 인기를 끈 어느 소설 제목대로 ‘한국이 싫어서’ 떠난다 할지라도 당신이 사랑하고, 당신을 사랑한 사람들은 한국에 남아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 희망을 소리 내어 말하고, 이 지옥 반도에서도 희망에 최대한 가까운 지점으로 가보도록 하자. 사랑하는 이들 앞에서 ‘포기자’라는 참담한 부끄러움을 견디지 않을 수 있는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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