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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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태어나서 고작 18년 남짓 교실에 갇혀 보호받을 뿐, 나머지 인생은 사실상 어떤 제도권 교육기관보다도 더 커다란 영향력을 무한정 행사하는 뉴스라는 독립체의 감독 아래에서 보낸다.” p.13

우리는 매일 뉴스를 통해 국내외 수많은 충격적인 사건과 문제를 접한다. 뉴스가 사건을 재구성하고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함과 동시에, 뉴스를 통해 사건을 접하는 대중들의 반응은 단순해진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뉴스는 ‘세월호 사건은 선장과 선원이 떠나지 않고 승객들을 구출했으면 됐을 일이고, 메르스는 초기 환자가 발생했을 때 정부가 잘 대응했으면 됐다’고 말하며 사건을 해석한다. 뉴스가 재구성한 사건들은 대중들로 하여금 ‘세월호 선장과 부모를 죽인 패륜아는 사형시키고, 대기업 임원과 국회의원의 연봉은 삭감해서 직원과 국민에게 돌려주고, 수입차 딜러의 폭리와 생닭의 6배에 달하는 치킨값은 내려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플로베르는 신문을 증오했다. 신문이 독자로 하여금 정직한 사람이라면 결코 타인에게 떠넘기는 데 동의하면 안 되는 어떤 임무를 그렇게 떠넘기도록 교묘하게 부추긴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 임무란 바로 ‘생각하기’이다.” p.80

뉴스의 문제는 명확하지 않은 문제를 ‘명확하게 보여준다’는 것에 있다. 이러한 접근 방법으로는 사실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세월호 선장이 ‘왜’ 무책임하게 배를 떠났는지?”를 더 깊이 고민해야 하지만, 뉴스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해자로 지목된 누군가의 잘못된 행동을 비난하고, 나는 다르다며 위안 받을 수 있는 지점에 스스로를 멈추게 만들기 때문이다.

“정작 문제는 우리가 더 많은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접한 그 사실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는 데 있다.” p.32

‘우리 애는 머리가 좋은데 공부를 안 해요!’라며 분노에 그치는 부모와 ‘왜 안 하는지?’를 고민해서 흥미를 유발하는 부모의 아이 중에서 어떤 아이의 미래가 밝을까? 뉴스는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전자의 부모가 아이를 대하듯이 만든다. 더 나아가 이렇게 축적된 분노는 금융위기 당시 월 스트리트를 없애려던 시민들처럼 정해진 해결 방안에서 벗어나 급진적인 방향으로 흐르기 쉽다.

“시위자들은 경제 제도에 잘못된 점이 있다는 것을 올바르게 인식하지만, 문제를 구체적으로 겨냥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알게 된다. 금융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려면, (그뿐만 아니라 개혁을 위한 현실적인 해결 방안에 접근하기 위해서도) 목적에 부합하는 질문과 그에 대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놀랍게도 매우 합리적인 해결 방안들이 저 바깥에 어른거리는데도, 결코 우연은 아닐 텐데, 우리는 뉴스를 통해 이런 방안에 대해 들어본 적이 전혀 없다.” p.157

뉴스는 팔리기 위해 대중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요구한다. 이 목적 하나로 성장해온 뉴스에 익숙해진 결과, 우리는 즉각적인 감정의 반응과 함께 한정된 관심밖에 쏟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게다가 뉴스는 재미가 없으면 언제든 다른 TV 채널로 돌릴 수 있도록 우리에게 리모컨을 쥐여주었다. 알랭 드 보통은 이런 상황에 의문을 제시한다. 그래서 「뉴스의 시대」에서 알랭 드 보통이 제시하는 물음은 답보다 귀중하다. 뉴스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리고 세상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이 물음이 묻는 것은 결국 ‘나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답을 지니고 있는 그가 유명한 작가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뉴스는 절대로 우리를 혼자 있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자신만의 생각을 잉태시킬 만한 인내심 많은 산파의 기술을 터득하지 못하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는 단단한 무엇을 하나도 갖지 못할 것이다.”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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