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로주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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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나의 파란만장한 이십 대는 막을 내렸다며 부랴부랴 책을 쓰고 김광석의 노래와 함께 술을 마신지가 엊그제 같습니다. 그런데 벌써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입니다. 어느새 송년회 약속이 하나둘씩 잡히기 시작했고요. 아마도 이런 송년회 자리에 술을 빼놓을 순 없겠죠. 저 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송년회만큼은 술과 함께하는 자리가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책과 술을 함께 판매하는 공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술에 대한 공부를 하고 의무적으로 책을 읽기도 합니다. 특히 두 가지가 결합된 ‘술이 등장하는 책’은 제가 눈에 불을 켜며 찾는 책의 종류입니다. (혹시 책을 읽다가 술이 등장하는 부분을 발견하시는 경우, 저에게 공유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전 에밀 졸라가 쓴 「목로주점」을 발견한 순간 바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왠지 술에 대한 찬사가 가득하고, 읽고 나면 술을 너무나도 마시고 싶을 그런 제목이라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읽고 나니 저의 명백한 착각이었습니다. 「목로주점」에서 술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 빠지게 만드는 도구’입니다. 이유는 등장인물들이 술 한두 잔이 아닌 알코올 중독이 의심될 정도로 많이 마셨기 때문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을 장려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 이런 책을 소개한다니 조금 이상하신가요?

저는 술이 우리의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술로 인해 우리의 삶이 힘들어지고 피폐해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고전의 역할은 경험해보지 못한 삶의 단면을 보여줌으로써 실제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목로주점」을 읽으면서 술이 우리의 인생에 어떠한 영향까지 미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면 앞으로 어떻게 술을 즐겨야 할지 가늠할 수도 있겠지요. 그것만으로도 이 책의 의의는 충분합니다.

“두 번째 잔을 들이켰을 때, 제르베즈는 고통스럽던 배고픔도 더 이상 느끼지 못 했다. 그녀는 쿠포와 화해했고, 그가 약속을 어긴 것도 원망하지 않았다. 서커스는 다음에 보면 되지 뭐. 사실 말을 타고 달리는 곡예 따위는 그렇게 재미있는 것도 아니었다. 콜롱브 영감의 주점에는 비도 오지 않았고, 급료가 독주에 녹아 버린다 해도 적어도 자기 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아름다운 황금색 액체처럼 맑고 빛나는 급료를 마시는 셈이었다. 아!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지껄이든 상관없어! 인생이 그녀에게 이토록 큰 즐거움을 준 적은 일찍이 없었다.” p.493

하지만 「목로주점」의 의의는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세계 최초의 민중 소설’이라 평가 받는 책인 만큼 당시 파리에 사는 서민들의 삶이 세세하게 그들만의 언어로 표현됩니다. 물론 주인공 외 주변 인물들의 삶과 시대 배경까지 세세하게 조명하고 있어 읽는 이에 따라 흥미로울 수도, 때로는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5년 전 봄, 제가 루브르 박물관에 갔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모나리자와 밀로의 비너스가 아닌 작품 앞에서 모사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관광객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몰두하며 그림을 그리던 그들의 모습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이 「목로주점」의 배경인 19세기에도 존재했다는 사실을 책을 읽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들의 눈길을 끈 것은 관객들이 오가는 가운데 화판틀을 설치해 놓고 아무 거리낌 없이 그림을 모사하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커다란 사다리 위에 올라가서 거대한 캔버스의 희미한 하늘 위로 열심히 붓을 놀리는 늙은 부인 하나가 그들을 놀라게 했다.” p.115

더불어 발명을 꿈꾸는 이들이 한 번쯤은 떠올렸을 만한 아이템이 바로 우산입니다. 바람이 조금이라도 세게 불면 우산살은 부러지거나 삐져나오기 일쑤이고, 들고 다니기가 번거로워 일 년에 여덟 번쯤은 잃어버리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상적인 우산을 만들기 위해 지금도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그 시절에도 이런 사람들이 존재했습니다. 인간이 느끼는 본연의 불편함은 시대를 막론하고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는 여전히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점점 더 큰 사업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 당시 그는 기막힌 발명품, 이름 하여 우산-모자, 즉 빗방울이 떨어지자마자 머리 위에서 바로 우산으로 변하는 모자를 구상하고 있었다.” p.528

저는 이 구절을 읽고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인물이 허황된 삶으로 가득 찬 인물이였거든요. 그만큼 이 책은 그 시절의 파리의 유쾌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매력도 있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기를 많은 분들이 왁자지껄하게 보내시는 듯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홀로 책 한 권과 술 한잔하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책 한 권과 술 한잔. 한 해의 따뜻한 마무리가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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