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리즘에 빠진 30대 직장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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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을 떠나기 앞서 서점에 들렀다. 비록 1박 3일의 빡빡한 일정이지만 런던은 처음이라 여행가는 것만 같은 여유를 느껴보고 싶었다. 자비 없는 일정으로 떠나는 출장자에게 여행 방법을 소개하는 런던 가이드북은 보지 않는 것이 나으리라는 생각에, 건너편 코너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집었다. 나는 런던에서 빅벤(Big Ben)과 런던아이(London Eye)를 찾아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보다 대영제국의 중심이자 역사와 현대를 품은, 도시 중의 도시인 런던을 어떻게 경험하고 바라보면 좋을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에 나온 도시를 바라보는 재밌는 시각들 덕분에 모처럼 생기 발랄한 출장을 잘 끝내고 왔다.

건축가 유현준이 이 책에서 말하는 도시는 인공적인 건축물의 집합이며 스스로 변하는 유기체이다. 문명의 발달에 따라 도시가 형성되면서 사람들은 기후와 자원이라는 자연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건축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도시 공간의 구획과 배치는 사회적 선택 혹은 일부 계층의 의도에 의해 결정되었다. 특히 근대 이후 경제 발전과 문명의 집중으로 인해 도시는 커지고 밀집되어 갔다. 하지만 도시의 매력은 이렇게 만들어진 인공물들이 자체적으로 상호 작용하며 도시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하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생적인 동력으로 발전해 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뉴욕의 발전 과정을 꽃의 관점에서 꿀벌을 바라보듯 표현한다. 즉, 도시와 건축물의 관점에서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표현하며 뉴욕이라는 거대 도시의 발전 과정을 설명한 것. 또한 이 책은 계획보다 급격하게 발전한 서울의 강남 지역과 서울의 역사를 층층이 간직하고 있는 강북 지역을 대비하며 각각이 지닌 매력과 문제점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러한 설명 과정에서 도시건축가의 구조화된 설명은 명쾌하고 익숙한 도시에 대한 해석은 새롭다.

개인적으로는 도시의 지형과 건축물이 역으로 사람들의 행동 양식을 결정하고 공간에 대한 인식을 다르게 만든다는 부분도 흥미로웠는데, 공장의 배치는 물론 관리형 사무실의 배치 구조는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구성되었지만 일방적 감시의 방향성을 규정하며 직장에서의 상하 관계를 명확히 하고 있다는 식이다. 런던의 하이드 파크, 뉴욕의 센트럴 파크, 보스턴의 커먼, 서울의 남산공원 중 어느 곳이 더 안전하고 흥미로운 도시 속 쉼터인지를 분석한 부분도 마찬가지. 공원들의 경사도와 이 지역을 둘러싼 건축물의 높이와 밀도를 통해 설명하는 장면에서는 고개를 절로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큰 줄기의 이야기와 별도로 내가 관심을 가지고 읽은 부분은 공간의 속도에 대한 연구였다. 보행자들이 속도를 늦추어 걸을 수 있는 거리를 조성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훌륭한 상권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지표로 홍대 앞, 가로수길, 명동, 강남대로, 테헤란로를 비교한다. 현재 정부는 소상공인 및 창업가를 지원하기 위해 2조 1천억 원이 넘는 신용보증 및 지원금을 사용했지만 현실의 경제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장사하기 손쉬운 대형 건물의 지하 아케이드는 충분한 여유 자금이 있는 사람들의 재테크 수단이 된 반면 한 움큼의 퇴직금을 겨우 손에 쥐고 있는 사람들은 거리로 내몰려 프랜차이즈 본사에 휘둘리는 경우가 많다. 상권 조성을 위해 테마가 있는 특화 거리 지정 등이 시도되었지만 대부분은 출입구에 간판세우기 식의 탁상행정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거리의 속도’ 지표를 만든 것과 같이 사람들이 모여드는 거리를 치밀하게 계산하여 조성한다면 소상공인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숲을 조성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기고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라 그 구성이 다소 산만한 느낌이 들고 억지로 끼워 넣은 듯한 챕터들도 있긴 하지만 각각의 주제는 흥미롭고 저자의 문체와 사용된 예시들은 친근하다. 다만 나와 같은 일반인 수준에서 도시의 구성과 그 속의 건축을 조금 더 알고 싶다면 조금 오래된 책이지만 김석철 교수의 「세계 건축기행」, 「김석철의 20세기 건축산책」과 서현 교수의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이 책들은 새로운 도시를 가서도 근거 없는 데자뷔에 시달리고 도시 간의 공통점만을 열거하기 시작한, 매너리즘에 빠진 30대 중반 출장자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최고의 가이드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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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타임즈(FT)에서 추천한 도시의 숨은 명소를, 구글 지도(Google Maps)에서 보고 싶다면? ‘Hidden Cities’ 시리즈를 추천합니다. 현재는 런던(London)브뤼셀(Brussels) 두 곳뿐이지만, 가이드북에는 등장하지 않을- 두 도시의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는 곳들이 궁금하신 분께서는 한번 둘러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