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아이같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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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벽두부터 전 세계를 ‘Let it go’로 후려침과 동시에 우리 집의 두 어린 것들을 사로잡아 지금까지도 온 집안을 엘사류(類)의 물건들로 가득하게 만든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은 한스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원작인 「눈의 여왕」은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소년 카이와 소녀 게르다는 다정한 친구 사이다. 그러던 어느 날 카이의 심장에 악마의 거울 조각이 박히게 되고, 마음이 꽁꽁 얼어버린 카이는 눈의 여왕과 함께 떠나버린다. 게르다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빨간 구두를 벗어 강물에 던지며 카이를 찾길 기원하고, 요술쟁이 할머니, 왕자와 공주, 산적의 딸 등 여러 사람들과 나팔꽃, 미나리아재비, 까마귀, 순록 등 다양한 존재들을 만나는 모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카이를 찾을 힘은 그들의 원조가 아닌, 게르다 안에 있었다. ‘어디로 가야 내 친구를 찾을 수 있는지’에만 관심 있는 게르다는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고, 잘해 주려는 사람들을 떨치며 끝까지 카이를 찾아 나선다. 그런 게르다를 보며 핀란드 여자는 ‘마음의 힘’에 대해 말한다. 자신의 안락함을 마다하고 누군가를 구해내려는 마음은, 이미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다.

“게르다의 힘은 마음 깊은 곳에 있어.
착하고 순수한 마음에서 나오는 힘이지.” p.83

눈의 여왕의 궁전에서 카이는 얼음조각들로 여러 낱말을 만드는데 아무리 애써도 ‘영원’이라는 낱말을 맞추지 못한다. 눈의 여왕은 말한다.

“네가 그 낱말을 만든다면 넌 자유의 몸이 될 거다.
그리고 온 세상과 새 스케이트를 주겠노라.” p.90

자신이 사로잡힌 줄도 모른 채 모든 아름다운 기억과 따스한 마음을 잃어버린 소년 카이에게 영원을 발견하면 자유의 몸이 되는 것, 동시에 한없이 크고 막연한 추상인 ‘온 세상’과 구체적인 소망으로써의 ‘새 스케이트’를 주겠다는 눈의 여왕의 말이 마음에 머문다.

마침내 게르다가 찾아온다. 얼어붙은 카이를 끌어안고 흘린 게르다의 눈물은 카이의 심장을 녹이고 거울 조각을 씻어내는 순간 카이도 왈칵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그 눈물을 타고 눈에 박힌 거울 조각이 빠져나온다. 두 아이가 울고 웃으며 서로를 끌어안자, 얼음조각들은 춤을 추며 스스로 영원이라는 글자를 만들어내고, 카이는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된다.

디즈니는 이 장면을 “진정한 사랑이 얼음 마법을 풀 수 있다구요!” 라는 올라프의 대사로 사뿐히 치환해버렸지만, 어른이 되어 읽는 이 장면은 참 슬프고 또 아름답다. 조건 없이 깊이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억, 그리고 그 기억을 과거에 매어두지 않고 지금 여기에 계속 쌓아가려는 의지는 영원이라는 무한에 맞닿아 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상을 받은 아이처럼 우리를 행복하게 하며, 차갑고 메마른 평가와 구속들로부터 우리의 영혼을 자유롭게 할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자신들이 어른이 된 것을 알게 되고, 할머니의 성경 읽는 소리를 듣는다. “너희가 아이와 같지 않으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어른이 되었어도 마음만은 여전히 아이인 두 사람은 따스하고 눈부신 여름의 한복판에 함께 앉아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이 동화는 끝난다.

이미 나는 심장에 거울 조각이 박혀 뭐든 비뚤고 나쁘게 보는 카이에 가까워진 건지, 「눈의 여왕」은 해피엔딩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쓸쓸하고 오래 뒤돌아보게 만드는 풍경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한 번 더 되뇌어 본다.. 너희가 아이와 같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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