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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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잔 :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음악과 술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음악은 재즈에 일가견이 있고, 술 중에서는 위스키와 맥주를 특히 좋아합니다.

그는 여행을 떠날 때 보통 테마를 정한다고 합니다. 토스카나 혹은 나파밸리에는 와인을 마시러 가고, 시코쿠에 가서는 우동만 먹습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는 위스키를 마시러 갔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이라는 ‘하루키 답지 않은 제목’이 붙은 이 책은, 위스키를 마시러 간 하루키가 두 여행지에서 보고 마시고 느낀 점을 풀어낸 에세이입니다. 책의 원제는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이고요. 번역자는 독자들이 조금 더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제목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제) 마음에 끌리는 제목은 단연 후자입니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이처럼 고생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잠자코 술잔을 내밀고 당신은 그걸 받아서 조용히 목 안으로 흘려 넣기만 하면 된다. 너무도 심플하고, 너무도 친밀하고, 너무도 정확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언어는 그저 언어일 뿐이고, 우리는 언어 이상도 언어 이하도 아닌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세상의 온갖 일들을 술에 취하지 않은 맨 정신의 다른 무엇인가로 바꾸어 놓고 이야기하고, 그 한정된 틀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아주 드물게 주어지는 행복한 순간에 우리의 언어는 진짜로 위스키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 적어도 나는 – 늘 그러한 순간을 꿈꾸며 살아간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하고.

둘째 잔 : 비어있는, 그러나 느낌은 충분한

여백의 미로 가득한 책입니다. 약 150여 페이지 밖에 안되는데, 사진이 절반에 가깝고 또 나머지의 절반은 여백이 차지합니다. 즉, 텍스트는 전체 분량의 1/4 정도 일뿐이죠. (제가 보기에 하루키는 그저 간략한 위스키 여행기를 쓴 것인데, 출판사에서 의도적으로 책으로 만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만… 어찌되었든) 가벼운 마음으로 술 한 잔 하면서 읽기에 좋은 글입니다. 특히 그의 문장을 읽노라면 위스키가 당길 수 밖에 없어요.

한 모금 마시고 나면 당신은 “이게 도대체 뭐지?”하고 놀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시 한 모금 더 마시고 나면 “음, 좀 색다르지만 나쁘지 않은걸”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게 느낀다면, 당신은 – 확률적으로 단언하건대 – 아마도 세 모금째에는 아일레이 싱글 몰트의 팬이 되고 말 것이다. 나도 똑같은 단계를 밟았다.

나는 대개 절반은 스트레이트로 마신다. 천성이 인색한 탓인지, 이 맛있는 것을 물 같은 걸로 묽게 해서 마신다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반쯤은 물을 타지 않고 그대로 마셔 버린다. 그리고 나서 잠시 쉬었다가 술잔에 물을 붓는다. 그리고는 술잔을 크게 한 번 돌려준다. 물이 위스키 속에서 천천히 회전한다. 맑은 물과 고운 호박 빛깔의 액체가 비중의 차이로 인해 잠시 동안 뱅그르르 소용돌이치다가 이윽고 서로 녹아든다. 이 순간은 또 이 순간 나름대로 근사하다.

절로 군침을 돌게 만드는 표현입니다. 아시다시피 싱글 몰트 위스키의 도수는 약 40도에 육박합니다. 꽤 높죠. 그래서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것이 부담 스러우시다면, 하루키가 언급했듯이 물과 함께 마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막 잔: 은혜로운 교조님의 신탁 같은

스코틀랜드에서 생산되는 싱글 몰트 위스키의 주 생산지는 크게 네 군데 정도로 나뉩니다. 스코틀랜드의 북부 지방인 하이랜드에서 생산(탈리스커 등)되거나, 하이랜드의 남동쪽에 위치한 스페이사이드에서 생산(맥켈란, 글렌피딕, 글렌리벳, 글렌 파클라스 등)되거나 남부 지방인 로우랜드(글렌킨치, 드래프트밀 등)에서 생산 됩니다. 마지막으로, 로우랜드 좌측에 위치한 작은 섬인 아일라섬에서 생산(라가불린, 라프로익, 아드벡, 보모어 등)됩니다. 그가 싱글몰트 위스키를 느끼기 위해서 간 곳이 바로 아일라 섬이고요.

아일라 섬의 싱글몰트 위스키는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과는 다른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대부분 육지 내에서 생산되는 것과는 달리 섬, 즉 바닷가에서 생산이 되기 때문에 특유의 스모키향과 바다의 짠내가 납니다. 그래서 호불호가 확실한 위스키입니다. 한편 하루키와 아일라 섬의 주민은 아일라 산 위스키를 이렇게 표현 했습니다.

“맛 좋은 아일레이 싱글 몰트가 코앞에 있는데, 왜 일부러 블렌디드 위스키 같은 걸 마신단 말이오? 그건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려는 순간에 텔레비전 재방송 프로그램을 트는 거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소?”

“아일레이 위스키를 좋아하는 열광적인 팬에게 있어서 ‘아일레이의 싱글 몰트’라는 말은, 은혜로운 교조님의 신탁과도 같은 것이다”

아일레이 섬에 가는 사람들 가운데, 만약 기회가 닿는다면 꼭 생굴을 먹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6월은 제철이 아니지만, 그래도 이곳의 굴은 대단히 맛이 좋았다. 다른 고장에서 먹어본 굴과는 상당히 맛이 다르다. 비리지 않고 알이 잘면서도 갯내가 짙다. 매끈하게 생긴 것이 흐물흐물하지 않고 탄력이 있다.

사실 저는 이 책을 읽고 마음이 움직여서 이내 아일라 섬에 다녀왔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의 일을 하고 있기도 하구요. 하루키의 가이드대로 생굴과 위스키를 함께 마셔보기도 했답니다. 먼저 생굴의 육즙을 후루룩 마시고, 그 빈자리에 위스키를 넣고 위스키가 굴에 스며드길 잠시 기다립니다. 그리고 어느정도 서로가 끈끈해 졌을 때 다시 후루룩 먹습니다. 그 순간, 하루키가 허투루 표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술을 즐기시는 분들은 맥주보다는 속을 뜨끈하게 만드는 소주와 따뜻한 청주 혹은 위스키를 찾는 계절이지요. 이 책과 함께 술 한 잔 하며, 추운 계절을 맞이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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