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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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풍경이 바뀌었다. 두툼한 옷을 꺼내 입고서 바삐 걷는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어둡다.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하기 전에 들이닥친 겨울 때문에 또 하나의 계절과 추억이 흘러가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인 걸까. 새삼스럽지만 익숙해지기 어려운 회한에 젖게 되는 11월이다. 오래 만나온 친구도, 오랜만에 만난 지인도 모두 무엇을 해야 할 지 고민한다. 어디로 이직해야 할 지, 그/그녀와 결혼을 해야 할 지 등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고민이지만, 핵심은 ‘방향’이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결정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의 방향을 찾아 헤맨 한 청년의 여정을 담은 소설을 소개한다. 『달과 6펜스』 로 유명한 서머싯 몸의 『면도날』이다. 극중 화자로 직접 등장하는 몸은 파리 사교계에서 미국인 엘리엇과 교류하게 되고, 그의 초대로 미국 시카고를 방문하게 된다. 그곳에서 엘리엇의 조카 이사벨과 그녀의 약혼자 래리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장래가 창창할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사랑 받는 젊은이다. 그런데 비행사로 참전한 1차대전에서 동료의 죽음을 목도한 후 래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삶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나는 언제 가장 행복한가.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입을 열었다. “말로 표현하기가 참 힘들어. 표현하려고 하면 혼란스럽기만 하고. 어떤 땐 이런 생각이 들어. ‘이런 것 저런 것을 고민하는 나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내가 거만하고 몹쓸 인간이라서 그런 걸지도 몰라. 나도 남들 가는 길을 가면서, 그럭저럭 세상사에 순응하면서 사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그럭저럭 세상사에 순응하면서 사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 말이야. 하지만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쌩쌩하던 녀석이 죽은 모습으로 누워 있던 게 떠올라. 그러면 모든 게 얼마나 잔인하고, 얼마나 무의미한가, 하는 생각이 들어. 인생이란 대체 무엇인가, 산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가, 아니면 삶이란 눈 먼 운명의 신이 만들어 내는 비극적인 실수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어.”

p.84

단 한 뼘만큼 떨어져 있는 생과 사를 두 눈으로 확인한 래리는 이러한 고민에 답을 찾기 위해 기나긴 여정에 오른다. 그는 파리를 시작으로 프랑스의 탄광과 수도원, 본의 농장 등 유럽 전역을 거쳐 인도까지 날아가 존재와 삶을 탐구한다. 이 책의 미덕은 영혼의 소리를 따르는 삶을 보여주되, 단 하나의 정답만 인정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누구나 추구하는 삶의 의미는 다르고, 생을 사랑하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다는 것이다. 안락한 생활을 모두 등 지고 떠나려는 래리를 선뜻 따라 나서지 못한 이사벨은 결국 래리의 친구 그레이와 결혼하게 되는데, 작가는 이러한 이사벨의 선택을 비난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눈에 속물로 보일지 몰라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실천한 주체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래리와 이사벨의 삶은 구도자와 중산계급으로서 그 양상은 달랐을지언정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바를 실천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래서 몸은 래리를 사람을 끄는 마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자주 언급한 것처럼 이사벨 역시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으로 그린다.

“얼마 전에 데카르트를 읽었어. 그 평온함, 품격, 명석함이란!”

그때 이사벨이 한사코 말해야겠다는 투로 끼어들었다. “하지만 래리, 그거 알아? 당신은 나한테 맞지도 않는 삶을 요구하고 있어. 내가 관심도 없고, 또 관심을 갖고 싶지도 않은 삶 말이야. 난 그저 평범한 여자일 뿐이라구. 몇 번이나 말해야 알겠어? 난 이제 겨우 스무 살이야. 10년 후면 늙어 버릴 거고, 지금 시간이 있을 때 삶을 즐기고 싶어. 아, 래리, 난 당신을 너무나 사랑해. 하지만 당신이 말하는 삶은 시시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을 거야.”

p.125

래리처럼 신 혹은 명상 안에서 행복을 찾건, 이사벨처럼 실크 드레스에서 쾌락을 누리건, 작가 서머셋 몸처럼 예술 안에서 의미를 찾건- 책에서 말하듯 “결국 자신의 영혼에서 위안과 용기를 찾아야 한다는 점”만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할 것. 이렇게 겨울이 성큼 다가올 때까지 실천하지 못했지만, 다음 봄은 나 자신에게 좀 더 솔직할 수 있기를 다짐해본다. 이번 겨울에는 이 케케묵은 숙제를 해내야겠다. 당신 역시 나와 다르지 않다면, 함께하기를 권한다. 교본으로 『면도날』을 추천하지만, 읽지 않아도 좋다. 그게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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