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조금은 아는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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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 되던 해, 내 방에 들여진 동서문화사의 세계문학과 한국문학. 아직도 생생한 황금색 표지 안의 깨알만한 글자들(그것도 2단으로 배열함)의 위엄! 부모님의 흐뭇한 눈길 아래, 나는 그 귀티나는 고전의 야한 부분‘만’ 몰래- 그러나 열렬히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갖춰진 내공은 향후 이력서 특기란에 발췌독, 이라고 써도 될 정도로 발전했다. 그렇게 강력한 내적 동인에 의한 주마간산 st. 독서가 한바탕 지나가고 나니, ‘뭐지? 전집을 다 마스터한 것 같은 이 기분은?’ 말하자면 이건 새벽에 대형 버스에 실려서 불국사에서 하차당해 간신히 눈을 떠 단체사진을 찍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경주 수학여행 같은 것이다. 경주? 아유 그럼 다녀왔지~!! 그런데, 거기 뭐가 있더라?

이전에도 몇 차례 읽었던 『보바리 부인』은 내게 그저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정도의 두루뭉술한 이미지였다. 그런데 결혼 10년차 애 둘 엄마가 되어서 다시 읽으니, 시간 속에서 이 책과 나는 서로를 비로소 괄목상대(刮目相對)하게 되었달까. ‘아니, 이 책에 이런 표현이 다 있었어? 완전 실감나네!’ 옆에 엠마 보바리가 있었으면 둘이 같이 맥주 한병씩 까면서 날밤을 새고 허심탄회하게 대화 나눴을 기세… 이 책에 너무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나 역시 ‘중년의 위기’란 것에 상당히 가까이 있지 않나 우려될 정도였다.

책에서만 읽었던 정열, 행복, 도취가 정말로 무엇인지 알고 싶어하는 엠마 보바리. 결혼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그녀에게 호색한 로돌프가 나타나 구애한다. 이 책의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그와 그녀의 열정적인 대화와, 농사 경진대회의 지루한 연설을 교차시키며 반복하여 보여준다. (어떤 식이냐면, “제가 당신 것이라는 것을 알아주시는군요. 당신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세요.”와 같은 장면과 “깻묵 활용 부문_ 플랑드르 퇴비 _ 아마의 재배”등이 이어지는 식인데, 읽으며 이 장면이 어찌나 인상적으로 남던지.)

식어가는 마음에 불을 지르고 마는 격정은, 사실은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 사이에 끼어 있기에 더 놀랍고 황홀하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은 아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까. 로돌프에게 버림받고 난 뒤 레옹과 재회한 엠마는 더 적극적으로 배도(背道)하는데, 플로베르는 그 본격적인 탈선의 시작을 이렇게 묘사한다.

한번은 들판 한가운데서 장갑을 벗은 손 하나가 작은 노란 커튼 밖으로 나왔다. 한낮, 낡아빠진 은빛 램프에 햇빛이 최고조로 내리꽂히는 때였다. 그 손은 발기발기 찢은 종이조각을 던졌고 그것은 바람에 날려 마치 흰 나비처럼 지천으로 피어 있는 붉은 클로버 꽃밭으로 멀리 흩어졌다.

엠마는 자신의 격정을 두려워하며 레옹에게 다시 만나지 말자는 쪽지를 쓰지만, 결국 그와 함께 탄 마차에서 그에게 굴복하고 만다. 마차 안에서의 정사는 묘사되지 않는다. 그러나, 위에 인용한 몇 줄에서 나는 전율을 느낀다. 자기 손으로 쓴 편지를 스스로 찢어발긴 바로 그 순간부터, 그녀가 탄 운명의 마차는 더 이상 멈출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본격적이고도 대담한 음탕과 사치 뒤에도 권태는 뒤따라오고, 결국 그녀는 파멸한다. 그러나, 플로베르는 묻는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을 따라간다고. 그러나 어떤 이는 명성과 훈장을 얻고 어떤 이는 패가망신하고 또 어떤 이는 약간의 양심의 가책을 곧 잊고 살아간다고. 보바리 부인은 다만 그들 중 한 사람, 이었을 뿐이라고. 다시 읽어도 새로운 책을 고전이라고 정의한다면, 나는 10년 후 그리고 20년 후에도 이 고전 『보바리 부인』을 눈을 비비며 정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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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백: lace fron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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