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자 여러분께

18_개인주의자 선언

을 통해 알게 된,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다. 같은 한국 사람이긴 해도 서로 다른 나라, 환경에서 자라 다른 방식으로 일하고 있고, 나이도 개성도 각각이지만, 생각과 대화의 리듬이 잘 맞는 그룹이었다. 긴 저녁 식사 중 우리가 가장 흥분했던 순간은 각자의 학창 시절을 회상하던 때였다. 아, 이런 친구와 그 시절을 함께 했더라면!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 중 많은 수가 학창 시절 외로웠다고,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해 보기도 했지만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을 찾을 수 없을 줄 알았다고, 더 넓은 세상을 만나서야 나와 잘맞는 사람들을 찾아내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왔다.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는 동안, ‘나도 그래. 네가 이상한 것이 아니야’라고 맞장구 쳐주는 분을 만난 듯한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법대-고시-판사로 이어지는, 우리 사회의 ‘수직적 가치관’ 이 인정하는 3박자를 갖추신 듯한 분이 정작 나는 개인주의자라고, 행복은 빈도가 중요하다고, 집단주의와 수직적 가치관 때문에 우리가 불행한 거라고 고백하며 ‘만국의 개인주의자들을 불러내는’ 책이니.

개인의 행복을 위한 도구인 집단이 거꾸로 개인의 행복의 잣대가 되어버리는 순간, 집단이라는 리바이어던은 바다괴물로 돌아가 개인을 삼킨다. 집단 내에서의 서열, 타인과의 비교가 행복의 기준인 사회에서는 개인은 분수를 지킬 줄 아는 노예가 되어야 비로소 행복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사다리 위로 한 칸이라도 더 올라가려고 아등바등 매달려 있다가 때가 되면 무덤으로 떨어질 뿐이다. 행복의 주어가 잘못 쓰여 있는 사회의 비극이다.”

– 22p. 

“어른이 되어서 비로소 깨달았다. 가정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군대를 모델로 조직되어 있다는 것을. 상명하복, 집단 우선이 강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의사, 감정, 취향은 너무나 쉽게 무시되곤 했다. ‘개인주의’라는 말은 집단의 화합과 전진을 저해하는 배신자의 가슴에 다는 주홍글씨였다. 나는 우리 사회 내에서가 아니라 법학 서적 속에서 비로소 그 말의 참된 의미를 배웠다. 그 불온한 단어인 ‘개인주의’ 야말로 르네상스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의 발전을 이끈 엔진이었다. (…) 이 복잡하고 급변하는 다층적 갈등구조의 현대 사회에서는 특정 집단이 당신을 영원히 보호해 주지 않는다.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전략적으로 연대하고, 타협해야 한다. 그 주체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개인이 먼저 주체로 서야 타인과의 경계를 인식하여 이를 존중할 수 있고, 책임질 한계가 명확해지며, 집단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에게 최선인 전략을 사고할 수 있다.

– 24~25p.

개인주의자는 이기주의자와 다르다. 다만, 집단을 생각하기 전에 우선 ‘나’를 이해하고,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간다.

“실제로 의미있는 변화를 도출하는 것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열광적인 환영을 받는 과격한 목소리들이 아니다. 이는 오히려 반대 의견을 가진 집단의 반발과 결속만 강하게 만들어 의견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뿐이다. 한 진영 내부에 생기는 작은 균열에서 변화의 지점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 균열을 만드는 것은 같은 진영 내의 온건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작고 부드러운 ‘다른’ 목소리들이다.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면 선거와 같은 큰 세력 다툼의 시기를 전후하여 집단 내부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생긴다.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은 코끼리를 먼저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과 맞서 싸우기보다 슬쩍 다른 길로 유도하는 방법을 택했다. 거창하고 근본적인 해결책만 고집하지 않고 당장 개선가능한 작은 방법들을 바로 적용했고, 작지만 끊임없이 균열을 일으켰다. 영웅은 이런 사람들이 아닐까.”

– 162~163p.

만국의 개인주의자 여러분께 즐거운 독서가 되시기를!

P.S. 이 책의 에필로그는 중앙일보 칼럼에 실렸던 따뜻한 글이다. 책장을 넘겨 가다 에필로그를 읽으면서 앗, 하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작년 가을, 칼럼을 읽다가 갑자기 딸의 이름을 발견했을 때도 그랬다. 시장에서 잠깐 잃어버렸던 아이를 찾아 가슴을 쓸어내리 던 때, 아이를 찾았느냐고 챙기시던 점잖은 신사분과 만났던 순간 느꼈던 놀라움과 고마움을 기억한다. 이제는 누구신지 알게 된 문유석 판사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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