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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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필요한 시간들이 있다. 마야 안젤로우는 사람들은 들은 말이나 했던 행동에 대해서는 잊어도,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잊지 않는다고 했다. 시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뭔가를 느끼게 하는데 가장 적합한 문학의 형태일 것이다.

시에 담긴 함축적인 언어는 (시인이 의도한 글과는 별개로) 독자들에게 스스로 받아들이고 해석할 수 있는 자유를 선사하므로, 시는 읽는 이가 처한 상황에 따라 재해석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나는 스스로 재해석한 감정으로 시를 읽고, 그 시로부터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을 사랑한다.

푸슈킨 시집은 내가 힘들 때 종종 꺼내 보는 글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라는 글은 지하철역에서 한 번쯤 읽어 봄직한 친근한 시다. 이 시를 읽어 본 사람에게도, 읽어 보지 않은 이에게도, 나는 이 시를 조용한 곳에 가서 읽어 볼 것을 권한다. 푸슈킨은 이 시를 통해, 삶이 질곡으로 조여 올 때 삶에는 환희 /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슬픔 / 노여움 역시 편린처럼 한데 어우러져 있기에 너무 노여워하지도, 놀라지도 말라고, 어쩌면 당연한 삶의 한 부분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살아 가면 결국 모든 것은 그립고 소중해지니 지금을 삼키고 견디라는 그의 말은 그의 불행했던 개인사를 돌아봤을 때 더 큰 울림이 된다. 그의 말처럼 격변기의 그의 세대가 사라진 지금, 이곳에는 온기를 전해 주는 그의 글만 남았다.

위로가 필요할 땐 언제 읽어도 좋다. 굳이 가장 읽기 좋은 계절을 꼽자면, 뜨거웠던 여름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소멸하는 서늘한 기운의 가을로 넘어가는 지금 읽으시면 좋겠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알렉산데르 푸슈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하지 말라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은 한 순간에 사라지지만 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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