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날, 가는 곳마다 깃발을 꽂아라

head_꼬날

안녕하세요. 저는 이미나라고 합니다. 블로그 네임인 ‘꼬날’이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회사에서도 그냥 꼬날이라고 불러요. 그래서 여러분들도 ‘꼬날 님’이라고 부르시면 좋겠어요. (웃음)

오늘은 어떤 걸 이야기하는 게 맞나 고민하다가, 여기 대표님이나 창업하실 분이 많으시잖아요? 그래서 창업했을 때 우리 직원들은 어떨 때 신이 나나, 어떨 때 보람차나, 어떻게 일할 때 직원들이 떠나가지 않고 계속 나랑 일을 할까. 이런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발표를 안 해 봐서 많이 떨립니다.

꼬날이 생각하는 스타트업

저는 첫 직장이 연예계였고 언젠가는 연예 산업 쪽으로 다시 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음반 기획사 로드 매니저로 일을 시작해서 우연한 기회에 인터넷 회사에 들어갔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거기서 못 빠져나오고, 어느 날 갑자기 홍보 담당이 되었고, 지금까지 계속 홍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투 두 리스트(To Do List)가 백 가지 정도 있을 때 그 중 가장 핵심적이라고 생각하는 거 1~5 정도를 완전 빡세게 해내면 세상을 조금 더 멋지게 만들 수 있거나,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걸 개발해서 혁신하고 있는 조직이나 단계’를 스타트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글이 셰릴 샌드버그에게 들어오라고 했을 때 구글은 너무 초창기여서 셰릴이 내가 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에릭 슈미트한테 물어봤대요. 그랬더니 에릭 슈미트가 “일단 로켓에 타라 그러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네가 할 일이 뭔지도 생각하지 말고 올라타라. 정말로 빨리 로켓처럼 성장하는 회사에는 그만큼 빨리 일이 생기고 시장이 확산되기 때문에 네가 와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이렇게 멋있는 이야기를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사실 저는 지금도 그렇게 나는 스타트업에서 뭔가를 혁신하고 있어, 이런 생각은 별로 없어요. (웃음)

피아노를 치다가 홍보를 시작하다

직장을 다니면서 회사가 0에서
완전히 발전하는 경험을 하는 건 흔치 않은데
제게 희열을 느끼게 해줬던 회사 같아요.

저는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고3 9월에 합창회 반주자로 학교 축제 무대에 올라가서 엄마가 학교에 쫓아오던, 음악 하던 학생인데요. (웃음) 제가 일생에 이렇게 해 본 건 피아노밖에 없을 정도로 피아노를 좋아헀고 아빠도 좋아하셨는데, 아빠가 고3 때 피아노를 전공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갈 수 있는 학교에 갔지만, 결국 대학교 가서도 피아노를 치고 싶어서 대학가요제 반주하고 그러다가 첫 직장으로 음반 기획사에 가서 로드매니저를 했어요.

음악을 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려고 로드매니저를 했는데, 일을 하면서 보니까 나는 이 산업이 맞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회사를 나왔어요. 그래도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음반 회사에 갈 수 있게 될 때까지 아르바이트하자는 심정으로 어떤 회사의 정직원으로 들어갔는데 거기가 검색 회사였어요. 그 때부터 약 3, 4년간은 제가 계속 음악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마음을 정착하지 못했고, 할 일을 찾지 못했어요.

그래도 상사 복이 있었어요. 대표님이 저를 되게 예뻐하셔서 비서처럼 따라다니면서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회사에서 ‘사이버 HOT’라는, HOT를 모델로 한 인공지능 대화 CD를 만든 거예요. 아, 드디어 연예 산업으로 다시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 CD 덕분에 방배동에 있던 초창기 SM이나 지금의 DSP인 대성기획에 기획서를 내면서 다니게 됐어요.

이거다, 신난다! 하면서 일을 하고 있던 찰나에, 대표님이 어느 날 우리 회사가 언론 홍보가 필요한데 제가 성격도 고만고만하고 PC 통신도 열심히 하고 글도 좀 쓰고 하는 것 같으니까 홍보를 해 보지 않겠냐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덜컥 홍보 담당이 된 거예요. 그게 1998년 8월의 어느 날의 일이었던 것 같아요. 선배도 없었고 배울 데도 없었는데, 어쨌든 저의 좌충우돌 홍보 인생이 시작된 거예요.

저는 1990년부터 꼬날이라는 닉네임으로 PC통신을 시작했어요. 일찍부터 시작한 거죠. 사이버 HOT를 어떻게 홍보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그 당시 5대 PC통신사인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 신비로 다섯 군데를 뒤져서 HOT와 젝스키스 팬클럽들을 쫓아다녔어요. 쫓아다니면서 CD를 5만장을 팔았어요. 정말 대박이었거든요? 5만장을 팔고 났더니 홍보가 재미있더라고요. 홍보라는 걸 제대로 해 보려고 회사를 찾아 보니까, 지식발전소라는 회사에서 홍보 담당을 뽑는다고 해서 그 회사에 이력서를 냈어요. 지식발전소는 ‘엠파스’를 만든 데인데 그 때는 엠파스라는 이름도 없었고, 자연어 검색 엔진을 만들고 있었어요.

엠파스는 1999년 11월 1일 오픈했어요. 저는 5월 1일 입사했거든요. 사이트를 만들고 있으니까 홍보할 게 없잖아요? 그래서 뭘 해야 하나 했더니 디렉토리를 만드는 팀에 들어가라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그렇게 검색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만 그 때는 디렉토리 검색이 유행이었어요. 그래서 디렉토리 만드는 팀에 들어갔어요. 1999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전체 웹사이트를 합쳐도 5,000개가 안 되었어요. 놀랍죠? 디렉토리를 만들면서 5,000개의 웹사이트를 거의 다 본 것 같아요 엠파스를 오픈할 때쯤에는 그 당시 정말 잘하는 홈페이지가 어딘지, 그런 걸 알게 됐고요.

직장을 다니면서 회사가 0에서 완전히 발전하는 경험을 하는 건 흔치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엠파스에 2년 2개월을 다녔는데, 그 2년 동안 쓴 보도 자료를 아직도 다 가지고 있어요. 어떤 회사를 다닌 사람으로써, 회사가 그만큼 발전하는 걸 맛보는 희열을 느끼게 해 줬던 회사였던 것 같아요.

첫 번째 로켓에 올라타다

엠파스에서 홍보를 시작했을 때 제가 서른 살 정도였거든요. 지금은 전문가 같은 말에 집착하지 않는데 그 때는 아직 어릴 때여서 그랬는지 전문가라는 라벨을 달고 싶었어요. 어떻게 하면 홍보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고 ‘OPQR’이라는 홍보 대행사에 이력서를 냈어요. 저는 홍보 전문가란 무릇 나한테 어떤 상품이 와도 홍보해 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엠파스에 있다 와서 그런지 몰라도 맨날 IT만 하는 거예요. 홍보 대행사에 1년 2개월 정도 있었는데 곰플레이어, 싸이월드, 데이콤, 이런 것만 맡다가 9개월쯤 되었을 때 ‘네오위즈’에서 연락이 왔어요. 검색 엔진을 만드는데 홍보 대행을 찾는다고. 그게 마지막 제안이었는데, ‘첫눈’이라는 검색 엔진이에요.

어떻게 수평적인 조직으로 일할 수 있지?
어떻게 이렇게 스마트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지?

제안을 따고 났더니 장병규 대표님이고 저한테 네오위즈에서 분사할 거라고 하시는 거에요. 직원 스무명을 데리고 스타트업으로 나오신 거죠.  그러면서 대행사 팀장인 저에게 일주일에 두 번 회사에 들어와서 일해 달라고 요청하셨어요. 이건 뭐지, 무슨 제안이지? 일단 들어갔어요. 갔더니 홍보 대행사 팀장인 저에게 모든 DB를 열어 주시더라고요. 제가 그렇게 3개월을 다니다 보니 이 회사에 빙의한 거예요. 회사가 너무 좋은 거예요. 회사가 이렇게 좋을 수 있나? 어떻게 이렇게 수평적인 조직으로 일할 수 있지? 어떻게 이렇게 스마트한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날 수 있지?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마침내 3개월 뒤에 제가 먼저 이야기했어요. 대표님 저 좀 뽑아 주시면 안 돼요? (웃음) 그랬더니 대표님이 원래는 홍보 담당자를 뽑을 마음이 없었대요. 그런데 자기는 좋은 사람이 들어오면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신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들어오래요. 그래서 제가 첫눈에 들어갔어요.

첫눈은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아무도 일을 시키지 않아요. 제가 제 일을 찾아야 해요. 제가 제 일을 찾는 방법. 그리고 수평적으로 일하는 방법, 굉장히 열린 마음으로 일하는 방법, 그런 것들을 처음으로 겪어 본 회사였던 것 같아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벤처 M&A 같은 큰 뉴스가 별로 없었는데 2006년에 정식 오픈도 하기 전에 네이버가 350억인가에 첫눈을 인수했어요. 저는 네이버로 합류는 안 했고요. 인수될 때 직원이 61명이었는데 그 때 모든 직원이 연봉 이상의 돈을 벌었어요. 그 미담으로도 유명했는데, 어떤 일을 굉장히 열심히 했을 때 모든 직원이 같이 돈을 버는 성공을 처음으로 맛본 회사였고요. 사실 첫눈 이후로 제가 다닌 모든 회사가 M&A 되었거든요? 지금은 그냥 M&A 되었나 보다 생각하는데, 그 때는 회사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울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에게 정말 많은 것을 가르쳐 줬던 회사였던 것 같아요.

두 번째 로켓과 파트너

두 번째 로켓은 첫눈에서 만났는데요. 제가 첫눈에 들어갈 무렵 첫눈에서 나간 분이 계세요. 노정석 대표님인데, 저는 채스터 님이라고 불러요. 2005년에 첫눈에서 만나서 지금까지 같이 일하고 있어요. 노정석 대표님이 그 때 첫눈을 나가서 ‘태터앤컴퍼니’라는 회사를 차렸어요. 태터앤컴퍼니는 여러분이 많이 쓰고 계신 ‘티스토리’라는 블로그 서비스를 만든 회사에요. 태터앤컴퍼니는 2007년에 구글이 아시아에서 최초로 인수한 스타트업이에요. 구글에 인수된 다음에 노정석 대표님은 구글에 가서 일하셨고, 구글에서 2년 일하다가 나와서 ‘아블라컴퍼니’라는 회사를 창업하셨어요. 저는 ‘엔써즈’라는 회사로 갔고요. 노정석 대표님이 구글에 계셨던 한 2년만 헤어져 있었고 그 외에는 계속 같이 일을 하고 있어요.

태터앤컴퍼니도 마찬가지에요. 일단 일을 시키지 않아요. 우리의 비전은 정확하게 말해 주세요. “우리는 이렇게 가고 있는 회사야. 그런데 우리는 이건 해도 되지만 이건 우리에게 안 맞는 것 같아.” 이 것만 정해지면 나머지는 제게 무한 권한이 주어지는 환경에서 일을 했고요.

그런 과정에서 한 2달에 한 번씩 지금 이 자리 같은 모임을 했어요. ‘태터캠프’라고 해서 블로그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사람 다 모여라, 이런 식이에요. 그래서 우리 회사의 고객들, 특히 VIP들을 2달에 한 번씩 계속 만나는 경험을 했어요. 한 번 할 때마다 한 200~300명씩 블로거들이 모여요. 재미있는 건 2006, 2007년에 고객으로 만났던 초기 파워블로거들 중 창업가가 된 분들이 많다는 거예요. 그래서 좋은 관계를 많이 가지게 된 것도 이 회사에서 얻은 좋은 점이고요.

태터앤컴퍼니에서 항상 이야기했던 건 오버 커뮤니케이션(Over Communication)이에요. ‘우리가 한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 이걸 항상 강조해서 회사에 1:1 문화가 되게 많이 있었어요. 회사 직원들끼리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일적으로도, 일 외적으로도 친해지는 문화를 많이 만들었고요. 결자해지. 말하면 내가 해야 해요. (웃음) 이런 일들이 많았고요, 그러다 결국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직원들과 사는 회사였고요. 구글에 인수되기 전 2년 동안 진짜 블로그 이야기만 했던 회사였던 것 같아요.

“가는 데마다 우리 회사의 숙주를 심고
가는 데마다 깃발을 꽂고 와라”

노정석 대표님이 이 회사에 저를 뽑았을 때 직원이 6명이었던가 했거든요? 홍보 담당 뽑는다고 했더니 주변의 창업가분들이 이렇게 조그만 회사에 홍보 담당이 뭐가 필요하냐 그랬대요. 노정석 대표님이 저한테는 “꼬날 님은 콩만한 우리 회사를 이만큼 외연을 넓힐 수 있게 만든 사람이다. 가는 데마다 우리 회사의 숙주를 심어 놓고 오고, 가는 데마다 깃발을 꽂고 와라”라고 말씀하셨어요.

사실 홍보 담당이 우리 회사와 관련되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게 이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만나서 관계를 맺어야 하고 앞으로도 만나게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무한 권한을 가지고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홍보 업무 환경에 대해 이 때 되게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이 때 제가 PR이라는 제 직업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면서 정리하게 되었던 것 같고요.

이 때부터 제가 생각했던 제 PR의 롤은 이런 거예요. ‘기업이 기업 활동과 관련 있는 공중들과 관계를 구축, 유지, 발전시킴으로써 기업 경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게 하는 모든 활동.’ 쉽게 말하면 이러이러해서 회사의 친구를 만드는 모든 활동을 저는 PR 활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

저는 사실 되게 게을러요. 3분 이상 안 걷고요. (웃음) 공부도 안 했고요. 잠도 많이 자고. 그런데 회사가 맨날 변하는 거예요. 매일 변하고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 하니까 늘 변화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 환경을 만들어 준다는 게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너무 좋은 점이고요.

저는 굉장히 소심하고 기도 약해요. 기 빨리는 사람이거든요. 용기 없는 나지만 우리 회사가 가진 게 아무 것도 없고 콩만하기 때문에, 나는 깃발을 꽂아야 하니까 새로운 곳으로 가서 문을 두드릴 용기를 준다는 게 너무 좋았고요.

결자해지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다 해야 해요. 저 행사 하면서 무대도 깔아 봤어요. 안 해 본 게 없어요. 풀패키지를 경험하게 해 준다는 게 스타트업을 다니면서 만날 수 있는 너무 좋은 점이고요.

익숙해질 틈이 없어요. 계속 회사가 변하고 있기 때문에 익숙해지면 안 돼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는 거. 일, 일, 일, 일들 속에서 정말 제가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친구들을 많이 만났어요. 정말로.

마지막으로 제가 있었던 회사가 ‘탭조이’라는 회사인데, ‘파이브락스‘를 인수한 미국 회사에요. 제가 드디어 미국의 스타트업을 경험해 본 거죠. 탭조이는 미국에 6개의 오피스가 있고 전세계에 6개의 오피스가 있어서 총 12개의 오피스가 있어요. 전세계 300명의 직원이 있는 작은 회사인데, 놀랍게도 전세계 오피스가 한 팀으로 일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어요. 재팬 팀, 차이나 팀, 미국 보스턴 팀, 샌프란시스 팀이랑 같이 일을 하는 게 재미있는 경험이었고요.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더, 어떤 일을 할 때 R&R(Role and Responsibilities, 역할과 책임)을 정하고 스케줄링을 하고 어떤 일의 ‘각’을 만드는 좋은 시스템을 많이 가지고 있더라고요. 작은 회사지만. 그리고 진짜 자기 표현을 잘해요. 내가 잘한 건 서로 잘했다고 자랑하고, 회의할 때도 망설임 없이 이야기하는 게 좋았고요. 그러면서 열린 커뮤니케이션, 보다 더 수평적인 사고방식. 그리고 지역, 경계 없는 시야를 갖는 것에 대한 중요성. 이런 걸 작년에 배우게 되었습니다.

8월 3일부로 제가 탭조이를 그만뒀거든요. 그래서 지금 백수에요. (웃음) 아직 아무런 계획도 없고요. 제가 노정석 대표님의 퍼스널 어시스턴트거든요? 비서이기 때문에 노정석 대표님이 투자하신 회사들 두 군데 정도를 파트타임으로 PR하려는 계획이 있고요.

저는 큰 꿈은 진짜 없어요. 저 한 몸 챙기기가 어려운 사람인데, 솔직히 6개월 뒤도 잘 모르겠지만 새로운 로켓을 타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요, 제가 잡고 싶은 행운은 하나입니다. 80세까지 로켓에 탈 수 있는 행운이 오면 좋겠어요. 준비하는 사람에게 행운이 온다고 해서 오늘도 열심히 어떤 준비를 하면 될까 게으르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웃음)

여기까지 발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Q&A

Q&A는 OEC 장영화 대표가 방청객들의 질문을 받아 진행했습니다.

Q. 여러 번 로켓에 올라탔는데, 노후 준비 다 해 놓으셨는지 궁금해요.
A. 저는 한 번도 창업가로 합류한 적은 없어요. 이제까지 이상하게 회사가 4번 다 M&A 되었는데 다 좋은 엑싯(Exit)이었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후 준비를 하지는 못한 것 같고요. 적금은 몇 번 탔죠. 제가 보기보다 잘 아프고 수술도 여러 번 했어요. 운영비가 많이 나가는 타입이라 번 만큼 많이 나가는 그런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웃음)


Q
. 매번 스타트업에 도전하셨는데 모두 성공해서 진짜 신기해요. 도대체 어떤 면을 보고 그 로켓에 올라탈 결정을 내리셨는지 궁금합니다.
A. 일단 제가 도전한 적이 없고요. (웃음) 제가 성공시킨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다 소개로 들어갔어요. 첫눈에는 제가 뽑아 주세요 하고 들어갔고, 태터앤컴퍼니가 구글에 매각될 즈음에 태터에 투자했던 소프트뱅크에서 연락이 왔어요. 엔써즈라는 새로 투자하는 회사가 있는데 기술력이 환상적이다, 이 회사에 면접을 보지 않겠냐고. 구글에 안 갈 거니까, 엔써즈를 만나서 그 때 남자 개발자만 8명 있던 회사에 여자 1번으로 들어갔어요. 엔써즈가 KT에 매각된 다음에는 노정석 대표님이 구글에서 나와서 창업했기 때문에 당연히 또 같이 하고 싶어서 들어간 회사가 파이브락스고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회사를 홍보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스타트업은 일당백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정말 좋아하는 서비스가 아니면 나가서 다른 사람한테 이게 좋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제가 좋아하는 회사에 가는 것 같아요.


Q. 힐링이 필요한 적이 있었는지?

A. 저는 매일 일기 쓰고 저에 대해서 생각하는 거 좋아하고요. 내가 정말 뭘 원하는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그런 걸 정리하는 거 되게 좋아하는 편입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