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다한 자의 완전한 마침표

16_여름

이디스 워튼의 중편 『여름』의 주인공 채리티는 궁핍한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시골 마을 노스드머의 늙고 상처한 변호사 로열 씨의 집에서 일한다. 로열의 연정을 오만하게 외면하고 더 화려하고 멋진 인생을 꿈꾸던 그녀 앞에는 매력적인 도회지 젊은이 루시어스 하니가 나타난다. 서로의 문화적, 지식적 격차를 충분히 감지하면서도 채리티의 사랑은 여름 햇살처럼 뜨겁게 타오른다. 그러나 익히 예상할 수 있는 대로, 남자는 비겁하게 떠나고 그녀의 뱃속에는 아이가 남는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을 알고도 채리티에게 손을 내미는 남자가 있으니, 그녀가 그 동안 경멸하며 무시해 왔던 로열이다. 채리티는 그 손을 잡는다. 아아, 줄거리를 요약하니 이렇게도 진부할 수가! 그럼에도, 이 소설은 선택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지치고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마음속에서 오직 한 가지 감각만이 현실의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만약 그 어린아이가 없다면 그녀는 바람에 날려 자신의 앞에 지나가는 엉겅퀴처럼 뿌리가 뽑힌 듯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그 어린아이는 그녀를 아래로 잡아당기는 짐이면서도 두 발로 일어날 수 있게 잡아주는 손길과도 같았다. 그녀는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 계속 걸어나가야 한다고 다짐했다.”

– 291p.

타의에 의한 결정이 굴종이라면, 자의로 내린 결정은 선택이 된다. 젊고 뜨거웠던 소녀는 아이를 지우는 대신 엄마가 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아이를 살리는 방법으로 로열과의 결혼을 택한다. 이 선택에는 물론 ‘곧 다가올 운명에 대한 메스꺼운 생각(309p.)’ 역시 깃들어 있지만, 아이와 자신의 안전을 위해 채리티는 로열을 받아들인다. 그녀의 선택은 너무나도 전일(專一)하고 당당해서 어느 누구도 비웃음이나 의혹의 시선을 던질 수 없다.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하니에게 편지를 쓴다.

“저는 로열 씨와 결혼했습니다. 언제나 당신을 기억할 겁니다. ㅡ 채리티 ㅡ ”

받는 사람의 무릎을 털썩 꺾이게 만들 짧고 분명한 편지. 자신은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만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줬던 뜨거운 여름날의 사랑을 기억하겠다는 그녀의 편지에, 비굴하게 도망친 남자는 두고두고 뒤를 돌아볼 것이다. 몸과 마음을 불사르는 뜨거운 사랑을 했다가, 예기치 못한 운명을 만나 예상치 못한 상대의 결혼반지를 끼고 집으로 돌아오는 채리티에게 차가운 가을 달빛이 비춘다. 그러나 그녀는 살아갈 것이다. 아이와 함께, 자신이 선택한 보호자와 함께. 묵묵히 그리고 충실하게. 진심을 다한 자만이 찍을 수 있는 마침표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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