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 vs 모르는 것

15_장하준의-경제학-강의

두 달 동안이나 통장 잔액 앞자리가 바뀌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2년 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취직을 했으니 다행이다. 기업에서만 9년을 일했던 내가 국제개발 석사 과정으로 진학한다고 했을 때 걱정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목적 의식은 명확했으나 도대체 개인이 국제개발에 기여하기 위해 무엇을 공부하고 어떤 훈련을 받게 될지는 정확히 몰랐다.

2년이 지나 무사히 졸업하고 돌아보니 내가 한 공부와 연구의 대부분은 경제학이었다. 첫 해 동안 미적분부터 해석학까지 수학의 족쇄에 매였고, 미시경제, 거시경제, 국제경제학을 각각 2학기씩 들으며 경제 이론의 늪에 빠져 있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나는 학과 교수 대부분이 경제학 박사여서 현실은 외면한 채 커리큘럼을 구성했다고 떠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국제 망신감이다.

하지만 그 지리한 1년이 지난 뒤 나는 경제학의 힘을 깨달았다. 개발도상국의 교육, 여성, 환경, 이민자 문제를 왜 경제학이 책임지려고 하는지 알게 되었다. 단순화된 경제학적 모델 속에 깊은 통찰력과 변화의 가능성이 숨어 있었다.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에서 MIT의 부부 교수인 아비지트 매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는 경제학적 틀을 통해 빈곤층의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경제학을 경이원지했던 나 같은 사람도 비용-효익, 시장실패, 총요소생산성과 같은 개념을 이해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니 시야가 깊어지고 넓어질 수 있었다.

그렇게 현실에 발을 붙인 경제학을 2년간 알차게 체험하고 이제는 투자 업무를 하는데, 두 달만에 벌써 경제적 이슈를 하나의 정보로만 듣고 깊이 이해하기 번거롭다 느끼고 있다. 여전히 경제학에서 알아야 할 개념이 너무 많다. 같은 현상을 두고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설명을 한다. 매번 발견하는 논리라고는 뫼비우스의 띠인 것만 같다.

스스로에 대한 적잖은 안타까움에 추석 연휴의 시작에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를 골랐다. 직설적인 제목만큼 내용도 적당히 지루하지만, 그만큼 촘촘하게 쓰인 책이다. 다행히 백과사전식 나열은 피하고 있다. 10년 전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읽을 때와 같은 반짝이는 즐거움과 까실거리는 가슴 떨림은 아니지만, 내 눈높이에 맞게 가려 가며 저자와 대화하듯이 읽을 수 있다.

유럽을 포함한 전세계의 경제를 아우르는 풍부한 사례, 경제 문제를 지식이나 정보가 아닌 가치관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을 바탕으로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꿈틀거리는 긍정적 의지는 장하준 교수를 믿고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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