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와 낙관, 편지들

14_이쾌대전

이번 추석 연휴, 서울에 계시는 분이라면 꼭 권하고 싶은 전시가 있다. 영화 《암살》을 재밌게 보신 분이라면 더욱 권하고 싶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진행중인 《거장 이쾌대 – 해방의 대서사》전이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니 토, 일, 화요일 중에 방문하면 좋다. 평소엔 오후 7시까지, 토요일은 9시까지 야간개장한다. 덕수궁 입장료 천 원만 내면 이 전시는 무료 관람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찬스를 놓친 분들이라면 11월 1일까지 기회가 있다.

‘이쾌대’로 검색을 하면 이미 많은 기사와 관람 후기, 사진과 그림들이 나온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What We’re ‘Reading’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 전시를 추천하는 이유는, 그의 그림도 있지만 그의 글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 해방기 – 한국전쟁이라는 고된 시기를 거쳤던 한 예술가가 남긴 또박또박한 정자체의 아름다운 손글씨 편지들에는, 역설적이게도 낙관과 애정이 가득하다.

“이 세상 만물을 하나님이 창조해 낼 적에, 어떤 해 며칟날 유씨따님과 이씨 아드님이 서로 만나서 그날부터 그 두 사람의 사이에 온전하고 행운한 사랑이 싹터 영원토록 즐겁게 살라는 것을 미래의 두 젊은이들에게 약속하셨나 봅니다.”

― 부인 유갑봉에게 보낸 연애편지

“기어코 고대하던 우렁찬 북소리와 함께 감격의 날은 오고야 말았습니다. 경성의 화가들이 ‘뭉치자 엉키자 다투지 말자’, ‘내나라 새역사에 조약돌이 되자’ 이와 같은 고귀한 표언 밑에 단결되어 나라 일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 1945년 8월 편지

‘20세기 전반부 남북한을 통틀어 최고란 평가를 받은 화가’임에도 불구하고 이쾌대가 ‘남과 북에서 모두 버림받은 천재화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된 까닭은, 전쟁 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열린 포로교환 시 북한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도 그의 행적은 지워져 있고 사망년도조차 불분명하다.

“아껴둔 나의 채색 등 하나씩 처분할 수 있는 대로 처분하시오. 그리고 책, 책상, 헌 캔버스, 그림틀도 돈으로 바꾸어 아이들 주리지 않게 해주시오. 전운이 사라져서 우리 다시 만나면 그때는 또 그때로 생활설계를 새로 꾸며 봅시다. 내 마음은 지금 안방에 우리집 식구들과 모여 앉아 있는 것 같습니다. 다음 또 쓰기로 이만 줄입니다. 11월 11일 이쾌대”

― 포로수용소에서 부인에게 보낸 편지

그러나 부인 유갑봉 여사는 이쾌대의 모든 작품, 사진, 편지, 습작, 기록들 일체를 30여년 동안 다락방에 숨겨 두고 정성스레 보관했다고 한다. 그는 포목상, 운수업 등을 하면서 네 자녀를 홀로 키웠지만 월북 작가의 가족에게 행해졌던 고문 후유증으로 1980년 사망했기에 남편에 대한 해금조치(1988년)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쾌대가 가졌던 낙관의 증거가 하나 더 있다. 전시장 구석에는 어린 아들의 옆얼굴을 연필로 그린 습작 노트가 있다. 그런데 여백에는 자신의 영문명 ‘Lee Quede’와 ‘Picasso’를 나란히 수십 번 반복해서 쓴 필기체 글씨가 가득하다. 피카소는 이쾌대의 롤모델이자 경쟁자였던 것일까? 20세기 동아시아 대륙의 끝에서 동시대 유럽 대륙을 호령하던 천재예술가를 바라보던 그의 심경은 무엇이었을까? 이상하게도 나는 여기서 눈물이 났다.


이쾌대에 대한 《매일신문》 상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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