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진실과 아들

14_자살의-전설

데이비드 밴의 소설집 『자살의 전설』은 작가가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중단편 소설 6편으로 이뤄져 있다. 작가의 아버지는 그가 13살 때 권총으로 자살했다. 아버지가 스스로 세상을 버린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작가는 글을 썼고, 10년 후 세상에 공개된 것이 바로 『자살의 전설』이다. 작가는 이 데뷔작으로 미국과 유럽에서 문학상을 휩쓸었는데, 특히 비극적인 사건을 서늘하게 담아내는 특유의 단문 때문에 미국의 대표적인 소설가 코맥 매카시의 뒤를 잇는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오늘은 수록작 중 유일한 중편 「수콴섬」을 소개하려 한다.

주인공 소년 로이는 아버지 짐의 제안에 따라 알래스카 외딴 산장에서 사계절을 보내게 된다. 부모가 이혼한 뒤 어머니와 지내다가 갑자기 아버지와 단 둘이 있게 된 로이는 새로운 생활이 좋지 않다. 불편하고 외롭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밤마다 들리는 아버지의 흐느낌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소설은 중반까지 심리적으로 위태로운 아버지를 지켜보는 소년의 시선을 따라간다. 실제로 작가의 아버지도 그에게 알래스카에 같이 지내자고 제안했는데, 부모의 이혼 뒤 어머니와 캘리포니아에 살던 작가는 아버지를 따라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다음 해 알래스카에서 자살했다. 아버지를 따라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수천, 수만 번 곱씹어봤을 텐데도 작가의 문장은 건조하기만 하다. 깊은 회한을 얼마나 오래 끌어안고 있었기에 후회와 통탄이 말라버린 건지, 헤아리기도 어렵다.

어떤 사건 이후, 이야기는 아버지 짐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짐의 심리를 면밀히 훑는 후반부에는 정신적으로 무너져내린 본인의 아버지와 그 죽음 뒤에 남겨진 자기 자신의 상처를 깊이 들여다본 작가의 세월이 오롯이 담겨 있다.

“짐은 식사에 집중했다. 식사를 마친 후엔 설거지를 하고 두 손을 청바지에 닦고 로이한테 돌아갔다. (…) 그러자 갑자기 상실감이 밀려드는 통에 하루 종일 맨바닥에 앉아 흐느껴 울기만 했다. 왜 그러는지 그 까닭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방은 춥고 어두웠으며 끝이 없어 보였다. 자신은 그 와중에 휩쓸린 작은 오점에 불과했다.

—196p.

『수콴섬』은 작가의 자전적 경험에 크게 기대고 있지만, 실제 사연과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는다. 사실(fact)보다 진실(truth)을 알고 싶었던 작가는 사실을 재구성하는 소설 쓰기를 통해 아버지의 진실에 조금씩 다가간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말이다.

그 어떤 말로도, 그 누구의 체온으로도 울음을 멈추기 어려운 밤이 있다면 숨을 가다듬고 글을 써보기를 권한다. 단어를 고르다보면 머리가 맑아지고 글씨를 쓰다보면 울음이 잦아들 것이다. 아버지를 잃은 소년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덧. 같이 읽을 만한 책으로 질 비알로스키의 『너의 그림자를 읽다: 어느 자살생존자의 고백』과 데이비드 실즈의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를 추천한다. 『너의 그림자를 읽다』는 밴과 비슷하게 가족인 여동생의 자살을 경험한 작가의 이야기이고,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밴의 경우와 반대로 생(生)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노년의 아버지를 둔 작가가 삶과 죽음에 대해 폭넓고 유머러스하게 다룬 에세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크게 다르지 않은 불행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껴안고 산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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