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얼굴을 읽는 선물

12_어바웃-리키

셀피(selfie)는 2015년을 대표하는 단어 중 하나지만 다른 사람이 찍어준 사진이 셀카보다 대개 정확하다. 물론 이렇게 ‘보여지는’ 게 편하지만은 않다.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 불행으로 걸어 들어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특히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드러내는 게 일인 배우의 삶은 고단할 수밖에 없다. 연기를 하고 싶어서 배우가 되었는데 셀러브리티로서 대중의 눈을 의식하게 된 경우는 더욱 괴로울 것이다.

타인의 시선에 영혼까지 찔려 본 이가 있다면 《씨네21》의 <ACTOR-ACTRESS> 코너를 추천한다. 그 주에 개봉한 영화에 등장한 해외 남녀 배우들을 다루는 이 코너는 영화 속 캐릭터로서의 배우뿐만 아니라 그들의 전사(前史)까지 꼼꼼하게 되짚는다. 매주 바뀌는 필자의 선호에 따라 배우의 인간적인 면도 깊숙이 엿볼 수 있다. 애정이 담뿍 담긴 문장들과 함께 말이다. <ACTOR-ACTRESS>는 작품 속 얼굴에서 배우 본연의 모습을 읽어내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씨네21》 1,020호에서 박소미 영화평론가가 다룬 주인공은 할리우드 대표 여배우 메릴 스트립이다. 지난 3일 개봉한 영화 《어바웃 리키》에서 66세 록가수로 분한 메릴 스트립은 잘 알려진 개성피 배우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카리스마 넘치는 편집장부터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가련한 멜로 여주인공까지, 모두 자신만의 얼굴로 소화해왔다. 박소미는 메릴 스트립의 오래된 제스처를 더듬으며 다양한 역할들에 녹아 있는 그녀의 맨 얼굴을 읽어낸다.

“언쟁을 벌이는 장면에서 종종 메릴 스트립이 하던 말을 멈추고 안경 너머로 상대를 빤히 응시할 때가 있는데, 잠시 뒤 그녀는 상대의 수를 읽어내기라도 한 듯 묘한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거둔다. 우리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인 이 제스처가 나오면 승세가 이미 그녀에게로 기울었음을 직감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글이 가장 따뜻한 부분은 《철의 여인(메릴 스트립이 대처 총리로 분한 2012년 작)》같던 메릴 스트립이 조용히 무너지는 순간을 묘사한 대목이다.

“가녀린 이미지와 거리가 먼 때문인지 메릴 스트립이 가장 안쓰러워 보이는 순간은 눈물을 펑펑 쏟을 때가 아니라 예기치 못한 순간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가까스로 삼킬 때이다. 물론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처럼 정통 멜로영화의 여주인공이 되어 흐느껴 울 때에도 그녀의 연기는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하지만 눈시울과 코끝이 빨개지는 순간 그녀가 대사를 멈추고 시선을 피한 뒤 입을 살짝 매만지고는 다시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지어 보일 때 더없이 애처로운 마음이 든다.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내가 못다한 고백을 읽어준다면 얼마나 감사할까?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먼저 주변 이들을 사려 깊게 읽어내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가 아끼는 이가 기꺼이 나의 시선 아래에 그의 몸과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다음 주 <ACTOR-ACTRESS>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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