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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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용한 세상이 좋다. 도시에서는 살 수가 없다. 너무 많은 소리가 나를 향해 달려든다. 너무 많은 표지판, 간판,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표정들. 나는 그것들을 해석할 수가 없다.”

– 94p.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은 출간된 지 꽤 된 책이다. 작가의 이름과 쉽게 읽힌다는 장점을 업고 출간 당시 높은 판매 부수를 자랑했다. 진지하게 분석해 보기도 좋지만, 가볍게 읽기에도 나쁘지 않은 소설이다. 아무래도 이렇게 함께 엮이기 쉽지 않은 장점을 다 갖춘 소설은 흔치 않다.

인간이 살면서 경험한 일을 사실 그대로 기억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 기억의 느낌이나 덧붙여지는 형용사는 물론. 사실관계마저 왜곡되기 쉽다. 그 이유는 사람이 일종의 생존 본능처럼 머릿속에서 자신의 기억을 이기적으로 편집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편집된 기억의 총합은 이미 정해진 메시지를 노리고 전략적으로 쓰인 자서전과도 같다.

이 소설은 ‘살인자의 기억법’이자 ‘살인자의 자서전’이다. 이 자서전은 선택된 사실 기술과 건조한 감상이 뒤섞여 매우 그럴듯해 보이지만, 결국 치매를 빌려 완성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주인공은 모든 것을 메모하기 시작하지만, 그 메모마저도 어긋나 버린다. 주인공이 기억하고, 적어 놓은 것들은 모두 자신의 지난 고통을 다른 기억으로 잊고자 만든 허언증 환자의 가짜 고백과도 같다.

비교적 쉽게 넘어가는 소설이지만 주인공의 기억을 의심하느라 뒤로 자주 왔다 갔다 하며 읽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이 소설의 주 메시지가 기억에 대한 의심이자 그 의심스러운 기억이 모여 만드는 게 한 사람의 인생이란 것이었으니, 그래도 나쁘지 않은 감상법이었다.

“문득 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무엇에 진 걸까. 그걸 모르겠다. 졌다는 느낌만 있다.”

– 143p.

 

“내 마음은 사막이었다.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다. 습기라곤 없었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어린 날도 있었다. 내겐 너무 어려운 과제였다.”

– 9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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